SK이노, 거부권 행사로 일자리·전기차 공급망 확대 '순기능' 주장
LG엔솔, "SK 배터리 수입금지 조치로 양사 합의 앞당길 것" 강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한 거부권 행사 시한이 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양사가 바이든 대통령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막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과 별도로 진행중인 민사 재판을 남겨둔 만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SK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SK 제품의 수입금지 조치야말로 양사 합의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고 반박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의 정계 및 에너지업계 전문가 영입 경쟁을 벌이며 바이든 정부 설득에 나서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전 미국 환경보호청(EPA) 청장 출신인 캐롤 브라우너 변호사와 전 미국 법무차관인 샐리 예이츠 변호사를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과 통상교섭본부장 출신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 등 주요 경영진 역시 미국에 머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위한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측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LG에너지솔루션이 패소하는 것이 아니며, 델라웨어 연방법원의 민사 재판이 남아있는만큼 수입금지 처분 발효를 거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양사의 배터리 분쟁을 민사 소송에서 따져보게 하고, SK이노베이션이 정상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바이든 행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전기차 공급망 확대를 위해서는 SK 배터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할 때 미국산(産)을 우선 사용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해당 전기차엔 미국산 부품이 절반 이상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으로 정부 기관의 자동차나 트럭 등을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 마디로 미국에서 만든 부품으로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선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 물량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미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배터리업체는 파나소닉,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AESC 등 4곳이며 이중 유의미한 대규모 배터리 투자를 벌이고 있는 곳은 LG와 SK 둘 뿐이다.
만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발을 빼면 배터리 공급량은 연간 25%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전기차 육성 정책과 상충된다.
사이먼 무어스(Simon Moores)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enchmark Mineral Intelligence) CEO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이 문을 닫으면 배터리 공급량은 올해 15%, 2030년 8% 각각 감소할 것”이라며 “미국의 전기차 생산능력은 연간 5만대 이상 줄어들 것”으로 우려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공급물량 부족과 함께 미국이 경계하는 독점금지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SK 배터리 생산이 무산될 경우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독점 생산 체제가 불가피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친환경차 시장 확대를 위해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을 함께 밀어줘야 하는 데 만일 SK 배터리가 무너지면 LG 배터리 독식 체제가 굳혀진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에서 경계하는 독점금지법과 상충되는 것으로, LG에너지솔루션에서 제안하는 SK 조지아주 공장 인수 및 일자리 창출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SK측 고문은 "(조지아주 공장을 LG에너지솔루션이 인수하게 되면) LG는 빈 껍데기만 사게되는 꼴이 될 것"이라며 "공장에는 어떤 장비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며 LG는 그들의 기술, 인력, 설비를 모두 갖고와 설치해야 하기 떄문에 수 년이 걸릴 것이고, 이는 완성차 업체의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견제하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방어도 만만치 않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에너지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로부터 자문을 받고, 다른 내부 관계자를 통해서도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니즈는 "수입금지 처분은 SK이노베이션이 신속히 합의하게 만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 사업이 막힌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를 서두르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양측의 설득전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현재 양사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의 최종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USTR은 ITC 상급기관으로,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의견을 모두 들어본 뒤 60일 이내에 승인 또는 거부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시간으로는 오는 12일 오후 1시까지로, 이번 결과에 따라 양측의 명운도 엇갈릴 전망이다.
거부권 행사는 SK이노베이션이 가장 바라는 카드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의 수입금지 처분이 철회돼 미국 사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공장도 가동을 재개할 수 있다.
반대로 거부권이 나오지 않으면 ITC 결정은 그대로 효력을 갖는다. SK이노베이션이 연방항소법원에 항소를 하더라도 수입 금지 처분은 유지된다.
다만 ITC가 포드에 4년, 폭스바겐에 2년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줬기 때문에 당장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유예 기간을 계산하면 SK이노베이션은 포드에 2025년까지, 폭스바겐에 2023년까지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향후 연방순회항소법원 항소 절차까지 ITC 구제명령 집행을 유예해달라고 ITC에 요청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