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집권 안정감, 편안함, 점잖음 보이는 데 일단 성공적
중앙 정부와 차별화 꾀하면서 협조적 자세로 신선한 정책
오세훈이 기대 이상으로, 보수가 집권하면 보여 줘야 할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보선 압승 후 취임 2주일을 넘기고 있는 그가 주요 언론 매체에 등장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새 대통령처럼 허니문 기간이어서라기보다는 오세훈 표 정책 때문에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 보름 동안 그가, 튀는 듯하면서도 중앙정부와 대결이 아닌 협조적 자세로 제시한, 논쟁적이면서 신선한 정책들이 하루 한 개 이상이다. 물론 많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그만큼 준비돼 있었다는 뜻이고, 의미가 있는 정책들이어서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고 있을 것이다.또 그 정책과 조치들이 진보좌파 정권의 그것들처럼 이념적이거나 정치 보복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돋보이기도 한다.
오세훈은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불편하고 급격한 변화,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환호 받는 시도는 하지 않는 시정을 펼 시장이 될 것이란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보수가 집권하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 다름은 안정감, 편안함, 그리고 점잖음이다.
그는 취임 후 첫 정책으로 서울형 코로나 상생 방역을 내놓았다. 신속한 자가진단 키트(Kit, 어떤 목적에 쓰는 도구, 장비 일습) 도입과 업종별 영업시간 재조정이 골자였다. 물론, 중앙 정부가 우려를 표명하면서 제동을 걸긴 했어도 문제 제기 자체로 새롭고 뭔가 국민을 위해 고민한다고 느끼게 하였다.
오세훈이 한강변 아파트 층고 제한 해제와 아파트 재건축 규제 완화를 말하자 서울 일부 지역 아파트값이 오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주고 싶다. 집값이 오르는 건 분명히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보수 시장 당선 효과'일 터이나 비정상은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풀 것은 풀면서 공급 확대 등 다른 조치로 집값을 안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재건축과 재개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정을 위한 개선 건의안 공문을 국토교통부에 발송했다. 아마도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이런 노력이 오세훈의 시정 평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관련해 합리적인 시장 위주 정책 대신 이념적인, 편 가르기로 강남·북 시민 모두의 불만을 사는 부동산 대란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그 심판을 지난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에서 받았다. 오세훈은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서울시 차원에서 최대한 재량권을 발휘해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가 지난 보름 동안 한 것처럼 나머지 보름을 잘 보내게 되면, 취임 한 달 성적표 여론조사에서 아마도 60% 이상 긍정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또 나머지 11개월도 큰 실수나 무리 없이 마치게 되면 내년 재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가 이번 주 초에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한 일은, 반대로 보수우파 시장이 성추행을 저지르고 진보좌파 인사가 새 시장이 됐더라도 똑같이 일어났을 법한 `정해진' 공식 조치이긴 했다. 그러나 오세훈이 했기에 다른 점도 있었다.
그 피해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즉시 시행한다는 새 시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오세훈 시장님의 공식 사과에 관한 내용을 봤다. 지금까지 제가 받은 사과는 SNS에 올린 입장문이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코멘트 형식의 사과였다. 오늘도 SNS 올린 사과문이 기사화된 것인 줄 알았는데, 시청 브리핑 룸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하셨다. 제가 돌아갈 곳의 수장께서 지나온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살펴주심에 감사하다. 저에게 보여주신 공감과 위로, 강한 의지로 앞으로 서울시를 지혜롭게 이끌어주시기를 기대한다. 감사하다.”
오세훈 앞에 있는 과제들이 이렇게 진정성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쉬운 것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정권 교체’의 통쾌한 맛을 만끽하고자 하는 보수 지지자들의 기대와 숙원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한편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그들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
김어준 퇴출과 시민단체들의 흡혈 기생 활동 단절 같은 것들이 보수 진영이 우선으로 그에게 바라는 조치다. 이 문제를 정치 보복이 아닌 모습과 내용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시장 재선과 차차기 대권에 도전할 오세훈의 기량과 상품성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미 지난 글에서 좌파 선동 프로그램을 장기간 맡아 온, 보수 진영에서 보기엔 암적 존재인 김어준을 어설프게 건드리지 않는 편이 더 많은 것을 얻는, 특히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다르다는 걸 이 기회에 보여 줄 수 있는 선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교통방송이 독립 재단으로 바뀌어 시장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도 없기에 더욱 그렇기도 하다.
정권에 대해 확실한 소신을 펴는 사람, 최재형이 이끄는 감사원에서 김어준에게 터무니없는 출연료를 계약서도 없이 제공해 온 교통방송은 직무 감사 대상이라고 최근 공식 입장을 밝히고 감사에 착수했다. 이런 감사원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립적인 시민단체들에 견제와 정리 역할을 맡기는 것이 현명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리고 오세훈은 허니문 기간의 호감에 절대로 취하면 안 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재인도 대통령이 된 초기에는 지지율이 80%도 넘는 인기를 구가했으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팬들이 인산인해였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에겐 그 많던 박수부대가 다 사라지고 40대 일부만 남아 있다. 오세훈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