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비방광고부터 최근 홍보물 훼손·탈취 논란까지
지속된 악연…“ESG경영·동업자 정신 밑바탕 돼야”
국내 주류업계 양대산맥이 도를 넘어선 홍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비맥주가 자사 홍보물을 탈취했다며 하이트진로를 경찰에 신고하자, 하이트진로도 오비맥주 역시 자사 홍보물을 지속 훼손해 왔다며 ‘맞고소’ 하는 등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선공은 오비맥주로부터 시작됐다. 회사는 최근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 부근 상권에서 신제품 ‘한맥’ 홍보물이 잇따라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관할 성남중원경찰서에 신고해 수사를 공식 의뢰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홍보물은 한맥 모델 이병헌의 등신대로 이달 들어서만 총 5건의 분실사고가 발생했다. 오비맥주는 경위 파악을 위해 업주의 동의를 받아 식당 건물에 설치된 CCTV를 입수, 이를 경찰에 증거로 제출했다.
해당 CCTV에는 지난달 9일 오전 7시경 정체 불상의 사람들이 식당 앞에 승합 차량을 세운 후 한맥 홍보물을 수거해 차량에 실은 뒤 현장을 떠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승합차량의 차적을 경찰이 조사한 결과 하이트진로 법인 소유 차량으로 확인됐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비슷한 형태의 불법행위가 계속되면서 하이트진로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경쟁사 영업방해 행위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하루 만에 반격에 나섰다. 하이트진로 역시 경쟁사 오비맥주가 자사의 홍보물을 훼손하는 사례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법적으로 맞대응 한다고 밝히면서 양사의 갈등은 순식간에 커졌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양시 범계역에 위치한 업소에 설치돼 있던 자사의 LED 맥주 홍보물이 훼손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업주 동의를 받아 식당 건물 CCTV 확인 결과 경쟁사 오비맥주 담당 직원이 훼손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도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 부착된 하이트진로의 맞춤형 홍보물을 오비맥주 직원이 훼손하는 장면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자사가 제작한 맞춤형 홍보물 훼손 사건은 이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하이트진로의 입장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주류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수년째 영업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그 동안은 영업현장에서 합의를 거치며 원만히 해결해왔는데 이번에는 오비맥주가 경찰 수사까지 의뢰한 것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 1994년부터 시작된 비방의 역사…“업계 전반적 문제”
주류업계 라이벌인 양사의 비방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1994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다.
당시 두산그룹 계열사였던 오비맥주는 업계 1위에 올라있었으나 두산전자의 ‘페놀방류’ 사건을 계기로 치명타를 입었다.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을 방류하며 수돗물을 오염시킨 사건이었는데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번지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하이트진로(당시 조선맥주)는 1993년 ‘하이트’를 출시하며 천연암반수로 만들어 청정하다는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하이트진로가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 등으로 오비맥주를 겨냥한 광고를 선보였고, 오비맥주도 맞대응에 나서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본격화 됐다.
두 기업은 이후에도 수차례 ‘물어뜯기’ 경쟁을 벌였다.
업계에 따르면 주류업계 비방전은 비단 두 기업 만의 일은 아니다. 업계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례로 2012년에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가 ‘참이슬’와 ‘처음처럼’을 놓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려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기도 하다.
또 지난달에는 하이트진로와 무학이 자사 홍보물(배너) 무단 수거 여부를 놓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업계에 따르면 두 업체는 예전에도 영업 과정에서 유사한 건으로 여러 차례 갈등을 겪은 바 있다.
◇ 선의의 경쟁 선행돼야…전문가들 “동업자적 정신” 지적
주류업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 이유는 단연, 점유율 확보에 있다. 양사는 20년이 넘도록 맥주업계 1,2위를 주고 받으며 비방전을 벌이다 최근 수 년간은 다소 잠잠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만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궁극적으로 음식점 주류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실적 부진이 길어지면서다. 과거와 달리 가정용 제품 판매 비중이 늘면서 영업용 제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품 판매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위기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소비자들은 두 기업의 ‘기’ 싸움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불법적인 영업활동을 동원해가며 경쟁하는 건 주류시장 이미지나 시장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시각에서다. 상생 경영이 주요 화두로 떠오른 만큼, 선의의 경쟁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고질적인 주류업체들의 비방전은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시장적 행태임에도 신속히 단죄가 되지 않아 전근대적인 ‘비방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는 쓴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지적을 내놓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이제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기업들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닌 사회적이고, 공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며 “ESG경영이 필두로 떠오른 만큼, 주류업계에서도 동업자적 정신을 가지고 상생하며 경쟁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