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외쳤을 때 이미 예정된 실패
로드맵도 없이 이념만으로 출발
국가경영 상궤 너무 멀리 벗어나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4년 전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다짐하면서 취임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분열과 대결의 수렁에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의 4년은 국민 분열과 상쟁의 세월이었다. 아직도 우리가 한 국민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철저한 편 가르기가 문 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혁명’ 외쳤을 때 이미 예정된 실패
취임한 그해 7월 G20 정상회의 참석차 베를린에 간 문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 부터 “국민의 41% 지지를 받고 당선됐는데,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는 어떻게 끌어안을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문 대통령의 대답은 취임사 그대로여야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 지성(至誠)으로 섬기겠다는 것 말고 무엇으로 국민 통합의 대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는 “무엇보다 전체 국민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빠른 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경제적 불평등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이 그런 답을 기대했을까? 정변적 사태를 겪은 후에 정권을 잡은 문 대통령이었다.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59%라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게 질문의 요지였을 터이다. 그러고 나서야 통합도 가능할 것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당시)이 오답을 보탰다. “문 대통령께서 41%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취임 후 국민적 지지율이 80%를 웃돌면서 사실상 국민통합에 성과를 내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취임 초의 높은 지지율은 통합 노력의 효과가 아니라 국민적 기대의 표시였을 뿐이다. 문 대통령이 그때까지 한 일이라고는 당선된 것이 전부였다.
문 대통령의 상황인식부터가 잘못됐다. 그건 혁명이 아니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집권세력의 분열, 정부의 무능이 부른 정부 전복 사태였다. 게다가 문 대통령과 그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야당이 시위의 주도세력도 아니었다. 그들은 반정부 시위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고 그 공으로 정권을 차지했다.
문 정권이 혁명의 결과였다면 대선 득표율이 41%에 그쳤다는 것은 설명이 안 된다. 상대방의 실수에 힘입어 얼떨결에 튕겨 나온 정권을 잡았을 뿐이라고 여겨야 했을 텐데 전 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정권을 세울 수 있게 된 사실에 너무 들떴다. 그래서 ‘촛불혁명’ 운운하며 ‘촛불의 명령’을 외치기 시작했다.
혁명은 구체제, 구질서, 구가치의 전면적 부정과 해체를 의미한다. 혁명정부이려면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인식한 ‘적폐’는 켜켜이 쌓인 폐단이 아니라 ‘구정권’과 ‘우파정치세력’이었다. 적폐청산이 제도의 쇄신보다 ‘인적 청산 및 징벌’ 위주로 추진됐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아닌가?
로드맵도 없이 이념만으로 출발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문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에겐 국가경영의 뚜렷한 포부와 구상, 그리고 로드맵이 없었다. 다만 보수세력, 보수적 국민의식에 대한 반감에 추동된 투쟁의 정치에 골몰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상대방의 자살골로 정권을 잡았다.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국가 경영의 책임을 맡은 것이다.
익숙했던 것은 좌파적 정치이념이었고 자신이 있었던 것은 편 가르기였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평등의 세상’을 열면 저항세력은 씨가 마를 것이고 이 땅 위에는 이념적 이상향이 금방이라도 세워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런 확신이 없이 어떻게 그처럼 무모한 독선‧독단의 정치를 강행할 수 있었겠는가.
문 대통령의 취임사가 그들의 교과서가 되었을 법하다. 그 글에는 온갖 아름다운 다짐과 약속이 다 들어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그 중에서도 백미였다. 이런 것이 바로 좌파적 언변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고 뒤흔든다. 그리고는 말로 끝낸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약속 어느 하나도 실천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실천의지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국민이 지난 4년간 목격한 것은 정부의 이념적 편향성이었다. 정권에 의해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이 촉발되고 정치는 선악 대결의 구도로 치달았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소상공인들은 삶의 기반을,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의회정치는 극단적 대결과 집권당의 전횡으로 일관했다. 과도한 친북 정책이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을 낳았다. 중국에 경도된 외교정책이 고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교사가 아니라 봉사자다. 민생의 안정과 국가의 발전을 책임지고 이끌 책임을 지고 있다. 국민이 안심하고 삶을 영위하면서 밝은 미래를 지향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은 이념에 함몰돼 있는 인상을 준다. 이념이 이끄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현실의 지체와 퇴행은 감수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인상이다. 이들은 그런 식으로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
국가경영 상궤 너무 멀리 벗어나
그간 국민은 대통령 리더십의 부재, 철학의 빈곤 상황을 싫도록 목격하고 경험했다. 부동산 대책이라는 것을 25번이나 내 놓음으로써 나름의 구조와 질서를 갑자기 무너뜨려 대혼란을 불렀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사파리 헌팅하듯 하는데 구경꾼 코스프레나 해서 신뢰와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4명의 가운데 가장 표를 적게 얻은 친여 인사를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인사권을 희화화했다. 북한의 모욕적인 언사에는 일언반구 대응을 않으면서 자신을 비난한 청년을 고소하는 옹졸함으로 국민적 조롱을 샀다. 일본과의 무역마찰에 이순신 장군의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로 맞서는 황당함을 보였다. K-방역을 온 세상에 자랑하면서 백신 확보에는 무능을 드러냈다. 단지 몇몇 사례일 뿐이다.
이제 1년이 남았다. 단언컨대 이 정권은 성공할 수가 없다. 이미 정상적 국가운영의 궤도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다. 그리고 정권 담당자들이 그간에 보여 온 행태로 미루어 자기성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에서 참패를 당했으면서도 반성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내부 분위기를 압도하는 현상이 바로 문 정권의 속성이고 한계다.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을 그는 갖추지 못했다. 정치적 보복과 응징에만 집착했을 뿐 국가 발전을 위한 포부‧구상‧열정은 보여주지 못했다. 자신은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실제 국정 운영은 이념성 뚜렷한 측근 참모들에게 맡겨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주어왔다. 그래서 더욱 이 정권에는 재기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정권 전반에는 아집과 교만이 넘쳐난다. 허장성세(虛張聲勢)까지 보태져 분위기가 으스스할 정도다. ‘검찰개혁’에 더해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진다. 이렇게 폭주를 계속하면 그 결과가 어떨 것인지는 굳이 지켜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교만으로 초래된 패망은 호소할 데도 없다.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