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모니터링·北 요청 '전제조건' 제시
"제재완화처럼 北이 솔깃할 제안 아냐"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코로나19 백신 제공과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미국 CNN방송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CNN은 이날 미 행정부 전·현직 관계자들이 백신 외교가 북한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해당 보도가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한 '비공식적 언급'이라는 점에서 북한 의중을 떠보기 위한 접근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도 백신 외교 및 인도적 지원 카드에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 (백신 지원 등을)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주민들에게 백신이 도달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는 과정이 동반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에 백신을 지원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역시 CNN 보도와 관련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논평 요청에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인도적 지원 요청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백신이) 수혜자들에 확실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효율적인 모니터링이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대한 백신 지원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하고 △모니터링 시스템이 확보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건 셈이다.
이어 국무부는 "현재로선 북한과 백신을 공유할 계획은 없다"며 "북한은 코백스(COVAX)와의 협력을 거절했고, 코로나19 대응 지원을 위한 한국의 제안도 거부했다"고 밝혔다.
앞서 코로나19 백신 국제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는 북한 요청에 따라 백신 199만2000회분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당초 예정됐던 5월 내 공급은 어려워진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부터 피력해온 방역 관련 인도적 지원 카드는 북한이 '비본질적 이슈'라며 거부 의사 분명히 밝혔다.
무엇보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대화 재개 조건으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던 만큼, 백신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을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가이익센터 한국 담당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 외교 구상이 좋은 아이디어라면서도 "제재 완화처럼 북한이 솔깃할 만한 제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앤서니 루지에로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 담당국장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주민보다 지도층의 안위를 우선시해 인도적 지원과 북미협상이 연관성을 갖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냉장 및 냉동 보관이 필수적인 코로나19 백신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질적 전력난에 허덕이는 북한이 백신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에드윈 살바도르 세계보건기구(WHO) 평양사무소장은 "코백스 가입국인 북한은 코로나19 백신을 공급받기 위한 기술적 요건을 따르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술적 요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백신 유통·저장 시스템 등을 마련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실적 한계'를 반영하듯 북한은 최근 내부적으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사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방역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