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가해자랑 단둘이 술 마셔…피해자로 보기 어렵다" 무죄 선고
대법 "사과받기 위해 가해자 만난 것" 판단 뒤집어
성추행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잘못됐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대학교 같은 과 동기를 준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대법원은 피해자 A씨가 추행 사건 이후 이씨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당시 사건의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대학 친구들과 간 여행에서 추행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것으로 생각해 피고인과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 별다른 어색함이나 두려움 없이 피고인과 시간을 보낸 것을 두고,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16년 12월 이씨는 피해자 A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이씨는 A씨 등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놀러가 숙소에서 잠든 A씨를 몸을 여러 차례 만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이 사건 뒤 군대에 갔고, A씨는 이씨가 복학한 뒤 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자 여행 당시의 일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당시 사건을 털어놓은 것을 알게 되자 피해자는 사건 발생 2년 7개월 만인 2019년 8월 이씨를 고소했다.
1심은 "진술의 일관성과 진술 태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전체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은 그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이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심신상실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강제 추행했다는 게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2심 재판부는 "사건 발생 당일 피해자와 피고인이 같이 사진을 찍고, 이후 단둘이 술을 마신 점 등을 볼 때,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