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질문에 "얘기할 상황 아니다"
정치권 해석 분분…여지 자체는 남겨둬
강직함과 따뜻한 인품 재조명…야권 군침
윤석열·김동연 비해 명분 약하단 분석도
최재형 감사원장이 야권의 새로운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최 원장 본인이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즉답을 피하면서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현역 정치인이 아닌 인물 중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 이어 세 번째다. 국민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후보는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야권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최 원장 등판설을 띄운 것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다. 지난 19일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주 의원은 "당 밖의 유력 대선주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겠다"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최 원장을 거론한 바 있다. 특히 두 사람이 과거 군 복무 시절 법무관으로 교류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발언에 무게감을 더했다.
대선 도전에 대해 최 원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상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제 입장을) 얘기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강하게 요구 받는 위치에 있는 공직자로서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분명하게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 측 원로들이 최 원장과 직접 접촉해 대선 출마를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설도 있다. 주 의원이 최 원장과 사전 교감 없이 차기 대선주자로 언급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최 원장은 보유한 정치적 매력이 커 야권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의 지역적 기반인 경남 출신이라는 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40년간 법관으로서 직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했다는 점, 아버지부터 가족 대부분이 군 간부로 복무하는 등 '병역 명문가' 집안 출신이라는 점 등이 꼽힌다.
또한 강직함과 인간적 따뜻함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도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주말마다 보육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최 원장 부부는 두 아이를 입양했는데, 인사청문회 당시 미담으로 소개된 바 있다.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위해 2년 동안 업고 출퇴근한 일화도 있었다.
특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 가장 주목받은 부분이다. "정치감사를 한다","주인행세를 하려 한다"는 등 정부여당 측 인사들의 노골적인 압박이 있었지만 최 원장은 굽히지 않았다. 청와대가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를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밀어 넣으려 했던 것을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이유로 막아낸 이도 최 원장이었다. 그의 강직함을 드러내는 척도로 여겨진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르면 8월 정도에는 최 원장의 출마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공직선거법상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일 90일 전에만 감사원장에서 물러나면 되지만, 출마를 한다면 조직 정비와 정당 가입 등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국민의힘 새 지도부가 선출되고 대선 경선 일정이 나오는 시점에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현 정부와 각을 세우며 대선에 도전하기에는 명분이 다소 약하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막기 위해 직을 내던졌던 윤 전 총장이나 '소득주도성장'에 맞서다가 사실상 해임된 김 전 부총리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강도 차이가 존재한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수완박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물러날 수 있었지만, 최 원장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며 "지난번 탈원전 감사가 오히려 정치적 해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권에서 플랜B로 생각할만한 요소는 충분하나, 당장 최 원장이 나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