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부총리,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따른 집값 하락 가능성 시사
서울권 주요 공공택지, 주민·지자체 반발에 난항…"국민 상실감만 키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향후 공급물량을 고려해 내 집 마련에 나설 것을 당부했지만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규택지로 지정한 주요 부지 개발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어서다.
26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홍남기 부총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에서 "내 집 마련 및 부동산 투자 시 올해 주택분양물량, 올 하반기와 내년 사전청약 물량, 부동산가격 급등 후 일부 조정 과정을 거친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진중한 결정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올해 정부는 서울 5만가구를 포함해 수도권에서 26만~28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하반기 3만가구에 이어 내년 3만2000가구 규모 사전청약도 진행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추후 시장에 많은 물량이 풀리는 만큼 주택 매매에 신중하란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 주도의 주택공급 확대에 따른 집값 하락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를 보면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5.05%다. 1년 전(1.92%)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준 서울의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10% 올라 15주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데다 정부의 공급대책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신뢰를 떨어뜨린다. 총 11만가구 규모의 수도권 신규 공공택지 발표는 하반기로 미뤄졌고 서울 도심 내 공공택지 개발계획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4000가구 규모 공공분양 및 임대를 계획한 정부과천청사 부지는 정부와 주민, 지자체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개발계획에 해당 부지를 포함한 데 대한 반발과 과천시가 이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지역 주민들은 현재 과천시장 주민소환 절차를 밟는 중이다. 사실상 개발 관련 논의가 중단된 셈이다.
태릉골프장은 당초 1만가구에서 절반 수준인 5000가구로 축소될 가능성도 나온다. 교통난과 환경파괴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노원구는 지난달 공급 규모를 줄여줄 것을 국토부에 요청했다.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 역시 난항에 부딪혔다. 서울시 안팎으로 국제업무지구에 포함된 이곳 부지 내 1만가구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강북권 알짜입지를 갖춘 만큼 지역발전을 위한 상업·업무시설, 기업 유치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오세훈 시장이 후보 시절 해당 부지를 놓고 "서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임대주택 공급부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만큼 정부의 공급계획을 시가 전면 재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시는 하반기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국제 설계 공모를 시행하고 부지 내 적정 주택 규모와 용도별 구성, 교통체계 방안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을 통한 실질적인 주택공급은 연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견해다. 택지 개발을 놓고 정부와 지자체의 줄다리기가 계속돼 공급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정치권에서는 매수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집값이 하락할 거라는 얘기를 한 건데 국민이 느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언"이라며 "정치권에서 이런 희망을 줌으로 인해서 향후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올랐을 때 정책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지고 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원활한 주택공급도 힘들어진다"라며 "실질적으로 1년 만에 정부 계획이 가시화하기는 무리가 있고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시그널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