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끝난 제품 재활용으로 일반 제품 보다 40% 탄소 절감
'탄소중립' 대두되며 글로벌 IT·車업계서 '러브콜' 늘어
국내 유일 PCR 함량 85%…다양한 색깔 구현해 경쟁력 UP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탄소중립. 친환경 제품 생산은 기업에겐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LG화학은 지난해 7월 탄소 배출 순증가량을 2050년까지 제로(zero)로 만들겠다는 '2050 탄소중립 성장'을 발표하며 남들 보다 한 발 앞서 환경과 사회를 위한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LG화학은 사업장 배출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수명을 다한 플라스틱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탄소 저감 활동에 속도를 내고 있는 LG화학 엔지니어링소재(EP) 익산공장에 지난 14일 찾아가봤다.
전북 익산시 제2 공단에 위치한 LG화학 익산공장. 이곳에선 대표 제품인 PCR PC를 만들고 있다. PCR은 Post-consumer recycled의 약자로, 소비가 끝난 제품을 재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PC(폴리카보네이트)는 LG화학이 가장 잘 만드는 석유화학 제품 중 하나다. 이곳 익산공장에선 폐플라스틱을 재가공해 일반 플라스틱과 동일한 품질과 색깔을 구현한다.
PCR 함량이 50%인 PC는 일반 PC 보다 40%나 탄소를 절감할 수 있다. 1만t 규모의 PCR 50%를 쓰면 약 2000만kg 의 이산화탄소(CO₂)를 감축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1만4000대 이상의 자동차가 1년간 뿜어내는 탄소배출량과 동일한 수치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주요 환경 이슈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재활용 플라스틱 비율을 최대한 늘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은 오는 2030년까지 애플 기기 제조 과정 전체에서 100%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던 PCR PC 제품이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매출 490억원을 기록했다. LG화학 전체 매출에서 490억원은 적지만 성장률은 20%였다.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률 LG화학 m-pcr 연구위원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경우, 기존 PCR 함량을 높여달라고 한다. 최근 문의가 많은 자동차, 산업재업체 등에서는 LG화학의 PCR 제품을 평가할 수 있도록 샘플을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장조사기관인 GMA는 전세계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지난해 397억 달러(한화 약45조158억원)에서 5년 뒤인 2025년엔 598억 달러(한화 약 67조8072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LG화학은 이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2025년까지 연평균 20%대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CR PC 제품 생산은 원재료 관리와 제대로 된 물성(물건이 지닌 성질)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 재활용 업체가 헤드램프, 건축자재, 비말 차단 시트, 투명 의자 등에서 폐 PC를 수거해 초기 원료 단계인 알갱이(Pellet, 펠릿) 형태로 만들어 공급하면 LG화학은 이를 받아 PCR PC를 만든다.
협력사들이 공급하는 대로만 펠릿을 받지 않는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에 참여한다. 원재료 품질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반 플라스틱 보다 떨어지는 기계적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첨가제를 잘 섞는 것도 관건이다. 이를 위해 LG화학은 2009년부터 꾸준히 PCR PC 기술을 갈고 닦았다. 십 여 년간의 노력 끝에 LG화학은 PCR 의 함량을 85%까지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과는 핵심 인재 덕분에 가능했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25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TDR(Tear Down & Redesign)팀을 출범시켰다.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자 재활용 기술을 높이기 위해 새로 만든 '어벤져스팀'이다.
성과는 두드러졌다. 과거 50~60% 수준이었던 PCR 함유량을 국내 최고 수준인 85%까지 높인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전자제품 디자인이 바뀌는 주기가 6개월이다. 디자인이 바뀔 때 마다 고객들은 새로운 소재를 요구한다"면서 "LG화학은 2년 내에 PCR 함유량을 95%까지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PCR PC 제품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생산공장에서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총 13호기의 압출기에선 시간당 각 600kg에서 800kg에 달하는 펠릿을 만든다.
협력사로부터 공급 받은 펠릿은 250~300도에 달하는 압출기를 지난다. 여기서 색이 변하거나 강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첨가제를 넣는다. 비빕밥을 만들 듯 이를 적절하게 혼합(콤파운딩)하는 것이 LG화학이 가진 핵심 기술력이다.
폐플라스틱을 가지고 일반 플라스틱과 동일한 품질과 색깔을 구현하기 위해 추가 공정을 거치다 보니 가격은 일반 제품 보다 최소 10% 가량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재활용 함량을 높이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있어 수요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펠릿은 주로 AI(인공지능) 스피커, 노트북 등의 소재로 활용된다. 재활용된 PC가 다시 전자제품 등으로 탈바꿈돼 소비자들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LG화학은 올해 처음으로 경량화 노트북에 PCR 제품을 공급했다. 머지 않아 가전제품 코너에서 LG화학 PCR 소재가 투입된 노트북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동일 물성 뿐 아니라 색깔에서도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생산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 컬러디자인센터(CDC)는 PC의 중요한 요소 중 하니인 색을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정확하게 구현해내기 위해 마련됐다.
아주 미묘한 차이라도 제품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색을 최대한 제공한다.
CDC 안으로 들어서니 화려한 색채로 가득찬 컬러 디자인 갤러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단색부터 펄 등이 추가된 이펙트 컬러(effect color)까지 첨가물을 이용한 다양한 질감과 색상들이 진열돼있었다.
박수진 컬러개발팀 책임은 "레드 계열이나 딥블랙은 컬러 구현에 안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가도 높은 편"이라며 "의뢰부터 시제품까지 1주일이면 받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높은 PCR 함유량, 다양한 컬러 기술을 보유한 유일한 업체로 유수의 업체로부터의 러브콜이 뚜렷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화학은 이처럼 플라스틱 원료 제조에서부터 최종 소비자까지의 완벽한 자원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 이를 화학업계 전반으로 활성화 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같은 지속가능성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고객은 물론 환경, 사회의 페인 포인트(PainPoint)까지 해결해 영속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만들겠다는 것이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LG화학의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