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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㊱] 고두심, 신들린 연기…사랑과 위로의 ‘씻김굿’


입력 2021.07.01 09:57 수정 2021.07.01 23:3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첫 해외영화제 수상 부른 명연기

영화 '빛나는 순간' 포스터 ⓒ이하 명필름 제공

영화를 어디서 보느냐, 누구와 보느냐는 관람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기자라는 직업인으로 다른 기자들과 영화를 볼 때는 웃음과 울음, 감탄과 불만의 표현을 통제당한다. 휴대전화 불빛 하나에도 표정이 바뀌는 타인의 ‘일’로서의 관람에 방해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얼마 전 영화를 보다가 ‘실례’를 범했다. 17일 전의 일이다. 서울 CGV용산에서 영화에서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 제작 명필름·웬에버스튜디오, 배급 명필름·㈜씨네필운)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양쪽 자리가 비어있기만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말을 뱉었다. 외마디도 아니었다.


“하, 작두 탔네, 무당이네.”


감탄의 말이었다. 반백 년을 살면서 연기 자체에 찬사가 절로 이는 명연기를 보는 기쁨도 흔하지 않지만, 장면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도 너무 크고 깊어서 감탄에 감동이 덮쳐 왔다. 곧이어, 고두심이라는 ‘영매’에 의해 그 영혼들의 한과 씻겨 내린 응어리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는지 온몸이 서늘하고 팔에 소름이 돋아 팔을 쓸어내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절할 것 같은 카타르시스에 전율했다. 눈물이 솟았다. 목을 꾸역꾸역 타고 넘어오는 쓰린 눈물이 아니라 갑자기 솟아 눈 밖으로 훅 튀어나온 눈물에 스스로 당황했다. 소리 없이, 눈물은 계속됐다, 배우 고두심의 말 그대로 ‘귀신 들린’ 연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리고 한참 후까지.


놓치면 아까운 압.도.적 연기ⓒ

“우리 어머니, 아버지…. 나만 아니었어도 그날에… 그 봄…, 엄청 잔인했지.

산속에 숨어 있었는데 내가 울었지. 젖먹이 어린애가 당연한 거 아닌가? 우는 게 당연한 거지. 근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 내가 우는 바람에 총에 맞아버렸어.

이리 팡! 저리 팡! 총소리는 막 왔다 갔다 하고 사람들은 막 총에 맞아서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하는데.

이 노릇을 어떻게야 하는지. 우리 어머니가 가슴에 총을 맞아서 막 뜨거운 피가 쿨럭쿨럭. 나오면서 안았던 애기는 아래 땅으로 떨어지고, 얼굴에 그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지니, 동네 삼촌들이 나를 안고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우리 영목이도…, 우리 영목이가 내 딸이야 저 깊은 바닷속에 있는 고운 내 딸. 그 어린 것을 뭐 한다고 바다에 데리고 나갔을까. 어떻게 하면 살아질까…, 살아보자! 해서, 해녀 만들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한 건데. 해녀 만들 욕심에 데리고 간 거야. 허무하게 보내 버렸지, 날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그때 내가 숨을 조금만 더 참을 수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참을 수 있었으면 살려낼 수도 있었을 건데.

살암시민 살아지매, 살암시민 살아지매. 살다보면 살아진다. 우리 해녀들 가슴속에 늘 그 말을 품고 살지. 그 한마디에 모든 걸 다 견딜 수 있으니까…. 물속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숨 참는 것도 견뎌내고 살아가는데… 힘들었던 것도 전부 다 이겨낼 수 있으니까. 내가 나이를 많이 먹어 노망 난 모양이네. 살다 보면 살아져.”


숨 오래 참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제주 제일의 해녀이자 제주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바람의 신’이라는 존경을 받으며 물질만 하고 살아온 고진옥. 전설의 해녀 삼촌(영화에서 보니 ‘삼촌’이라고 부르더라. 얼마나 척박한 일인지, 숨 참고 들어간 바다 깊이만큼이나 세상 저 바닥의 고된 일을 하는 해녀의 삶이 담긴 호칭이다) 고진옥을 촬영하러 서울에서 온 방송국 다큐멘터리 PD 한경훈. 고진옥을 ‘제주의 딸’이자 같은 성씨를 가진 배우 고두심이 연기했고, 한경훈을 미소가 예쁜 배우 지현우가 연기했다.


한사코 촬영을 거부하던 진옥이 경훈의 마음속 상처를 느끼고 출연을 수락하고, 일하러 왔다가 마음에 연고가 발리는 치유를 진옥에게서 받아 마음이 열려가던 그때. 경훈이 묻고 진옥이 답한다.


경훈: 오늘은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할게요. 촬영을 계속 거부하셨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진옥 : 못난 얼굴 텔레비전(TV)에 나와 봤자지. 누가 봐, 나도 양심은 있어.

경훈 : 왜 본인 얼굴이 못났다고 생각하세요? 마을의 자랑이신데.

진옥 : 어이구, 얼어 죽을 자랑, 난 그냥 내 얼굴이 싫어 미워.

경훈: 왜요?


이유를 묻는 경훈에게 진옥이 들려준 답이 위의 ‘신들린’ 장면이다. 촬영 거부 이유가 얼굴에 있었음이, 진옥이 자신의 얼굴이 싫어진 이유가 드러나는 장면인데, 그 이유가 예상치 못하게 1948년 4월 3일, ‘제주 4·3 항쟁’으로 치닫는다.


진옥의 말대로 젖먹이가 우는 건 당연한데, 그 울음소리에 어미와 아비가 총을 맞았다. 가슴에 총을 맞은 어미는 아기를 땅으로 떨구고, 그 가슴에서 쿨럭쿨럭 쏟아진 붉은 피는 한 살배기 얼굴로 쏟아졌다. 멈출 줄 몰랐을 뜨거운 피에 어린 것이 질식해 죽을까, 총알 피하려 달리는 사람들 이미 총 맞아 이리 뒤집히고 저리 쓰러지는 사람들에게 밟히고 눌릴까 싶어 동네 어른들이 어린 진옥을 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살려낸 목숨. 어머니 아버지의 목숨값으로, 제 목숨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어린애를 살려준 어른들의 희생으로 이어진 명줄. 자신의 얼굴이 예쁘고 자신이 자랑스러울 리 있겠는가.


고두심의 연기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현실적으로는 ‘네가 그걸 어떻게 살았냐면…’, 젖먹이 어린애가 자라면서 동네 어른들에게 들은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다 내려다보고 있었던 신의 관점에서 혹은 그 잔인한 봄에 죽어간 이들이 목격한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영매’가 된 듯 칠십여 년을 눌러왔던 울분을 토해낸다. 진옥의 울분이자 봄부터 가을까지 죽어간 제주 사람들, 그날들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울분이다.


어쩌면 엄마 품에 안겨 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어린 진옥의 뇌리에 그날의 모든 아픈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설사 소문준 감독이 그렇게 상상하고 그렇게 적었다고 해도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믿어질 만큼의 연기를 배우 고두심이 해냈다. 워낙 연기 잘하기로 정평이 난 고두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제주에서 나서 자라면서 하도 들어 마치 내가 겪은 듯 생생하게 알고 있는 그이기에 가능했던 토로다.


소문준 감독은 이 명연기에, 고두심의 얼굴에 카메라를 바짝 대고 배우에게 도망갈 틈을 1cm도 주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 고두심은 피하지 않았고, 두 번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이, 본인의 말을 빌자면 “뭐에 씌인 듯” 연기했다. 한 판 제대로 놀아주는 ‘씻김굿’ 같은 연기에 제주 4·3 원혼들의 한이 씻기고, 꼭 그 일은 아니더라도 살면서 갖은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의 등을 고두심이 토닥인다. 경훈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에도 치유의 연고가 발린다.


배우 고두심 ⓒ

시사로부터 1주일 뒤, 서울 평창로 고불고불 언덕 위, 인왕산 바로 아래 카페에서 고두심을 인터뷰로 만났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젖먹이 시절 얘기하는 장면, 말 그대로 신들린 연기를 보았습니다. 카메라는 바짝 코앞까지 와 있고. 어떻게 연기했는지 당시를 회상한다면요.


“1948년도에 발생했어요, 저는 51년생. 하지만, 내가 본 듯 내가 겪는 듯하게 살아왔어요. 많은 친척분이 돌아가셨고, 우리 할아버지도 그때 돌아가셨고요. 엄마, 아빠, 친척들 입을 통해서 들었지요. 제주에서는 제사 때면 친척네 집이라도 다 가요. 먹고살기 힘드니까 (제사 지내는 집에 폐 덜 끼치려) 빵 들고, 쌀 한 되박 들고 가요. 끈에 묶고 보자기에 싸서 가면, 앞집 뒷집 다 울어요. 이 동네는 다 몰살당한 집이라는 거야. 그러니 그 아픔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한 방에 숨어 있는데, 일렬로 서 있었는데, 내 앞사람까지 총알이 오고 나는 뚫지 못한 거야. 그렇게 산 사람은 살겠어요,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거죠. 내가 당한 것처럼 그렇게 들었어요, 그런 얘기들을 수없이. (그런 얘기들이) 막 나오는 거예요. 나도 그 신 끝나고, 신 내린 줄 알았어요. 스태프 분들 흐느끼고. 억울하게 죽은 혼의 반 푼이라도 풀리는 장면이면 좋겠다고 바라요.”


“감독님이 쓰신 대사 외의 것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어려서 들었던 얘기. 모이면 ‘장화홍련전’부터 얘기하잖아요, 입담 좋은 어른들이. 숨으려고 길에 나오면 시체 밟고 지나갔어야 했고, 밤중에 뭔가 하고 보면 시체였고, 그런 걸 듣고 살아와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 계셨던 집에 둘째 오빠가 사는데, 삼양(동네)이 정말 많이 죽었다고 해요, 지금도 친척들이 사시는데. 그런 걸 토대로 하는데, 몸에 담고 있었는지 거미줄이 풀려나오듯 막 풀려나오더라고요. 감독님도 놀랬죠, 써 준 거 아닌 거 나오니까. 근데 감동적이니까 컷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대본 읽는데, 숙지하는데 그림은 그려졌어요. 영화에 나온 대로 써가지고 나간 게 아니라 감독님 글로 큰 그림만, 제목 문구만 머릿속에 꽂아 놓고 하는데 그냥 막 나오더라고요.”


해녀 고진옥. 진짜 옥, 세상의 보석 같은 여인. 물에 대한 공포증을 이겨내고 물질 연기를 한 고두심 ⓒ

4·3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딸을 잃은 자책의 한을 건너 모진 인생을 견디게 한 종교 같은 한 마디 ‘살암시민 살아지매’로 마무리되는 이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연기다. 이리 고되게 살아온 진옥이 또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마음의 열매로 자신이 여자임을 새삼 상기하고 사랑의 감정에 설레는 모습은 나이 들어도 마음은 언제나 여자인 세상의 ‘진옥이들’에게 위로를 안긴다.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은 배우 고두심의 ‘빛나는 순간’ 연기에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백상예술대상 포함 연기대상만 7회, ‘친정’ MBC를 비롯해 KBS와 SBS 연기대상까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배우 고두심이 해외영화제까지 지평을 넓힌 ‘빛나는 순간’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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