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인선서 예상 넘는 정무 감각
정치권 일각 의구심 불식하는 행보
"본인·가족 삶의 궤적 흠없이 깨끗
이재명 천적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권교체 필요성을 역설했다. 자신의 일정 등을 알릴 언론 소통 창구도 지명했다. 명시적인 정치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의 대권 행보는 시작됐다는 관측이다.
최재형 전 원장은 12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자리에서 "모든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고,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되고 어렵고 힘든 분들에게도 빛이 비춰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대한민국을 밝히는 것"이라며 "그런 생각을 갖고 정치에 뜻을 두게 됐고, 그런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은 부친의 삼우제 때문에 현충원을 찾은 자리라 공식적인 정치 선언을 하기가 부적절해 삼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시지로 보면 범야권의 대권주자로서 필요한 메시지는 빠짐없이 나왔다는 분석이다.
정치를 시작한 이상 당면 현안인 국민의힘 입당 문제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장외 단일화' 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히 판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재형 전 원장은 "정치라는 것은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힘을 모아서 공동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원칙에서 입당 여부와 시기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정치는 정당에서'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전 총장과의 '장외 단일화'에 관한 질문에는 "나를 윤 전 총장의 대안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나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며 "윤 전 총장과의 협력 관계는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릴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당밖에 있는 상황에서 '장외 단일화'가 추진되면 윤 전 총장에 비해 현재 지지율이 낮은 최 전 원장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제3지대 단일화'를 했던 금태섭 전 의원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결국 윤 전 총장과의 협력 관계는 지금 단계가 아닌 다음 단계, 자신의 국민의힘 입당과 그에 따라 지지율이 제고된 이후에 보다 대등한 위치에서 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의 캠프 첫 인선인 언론 소통 창구 지명도 신선한 충격이라는 관측이다. 최 전 원장은 이날 국민의힘 전직 3선의 김영우 전 의원을 자신의 언론 소통 창구로 지명했다.
김영우 전 의원은 YTN 기자 출신으로 지금의 국민의힘 전신 정당에서 수석대변인과 대변인을 지냈다. 3선의 정치 경륜까지 더해 언론 대응과 공보 분야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선택한 셈이다.
또, 김 전 의원은 정치적으로 보면 옛 친이계이자 중도개혁·소장혁신파로 분류된다. 그간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재형 전 원장의 주된 지지 기반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수사 문제로 도저히 윤석열 전 총장을 지지할 수 없는 옛 친박계 세력들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져왔다. 김 전 의원의 지명은 이같은 의구심을 단번에 불식시킬 수 있는 묘수라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 전 원장의 이날 행보와 관련해 "현실정치는 전혀 모르는 마냥 선한 분인 줄 알았는데 메시지나 인선으로 볼 때 예상을 뛰어넘는 정무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며 "범야권 대권 구도를 뒤흔들 복병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바라봤다.
아울러 "최재형 전 원장은 본인이나 가족의 삶의 궤적이 흠잡을 데 없고 깨끗하다는 점에서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천적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면서도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고, 특히 본인이 공언한대로 '나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는 것은 앞으로 본인하기 나름"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