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등장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한국의 풍물로 자주 나오는 소재가 산낙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산낙지를 보며 외국인은 기겁을 하고, 그러면 우리 프로그램은 그런 외국인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부각시킨다.
산낙지는 사실 살아있는 낙지가 아니라 죽은 낙지이지만, 프로그램 속에선 진짜로 살아있는 생물들도 등장한다. 낙지나 문어 등이 산 채로 들어있는 냄비 속 매운탕 국물을 그대로 끓이는 장면이나 펄떡이는 새우를 그대로 굽는 장면 등이다.
이럴 때마다 외국인들은 놀라거나 괴로워하고 우리 시청자는 그런 외국인의 모습을 즐긴다. 외국인들이 생물의 생생한 맛을 먹을 줄 모른다며 혀를 차고, 가끔 용기를 내서 시식한 외국인이 맛있다고 하면 ‘그러면 그렇지’라며 흡족해 한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괴로워하는 생식 문화를 우린 마치 자랑거리처럼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문제가 없는 걸까?
올해 개정을 앞둔 영국 동물복지법이 그 대상을 개, 고양이 등에서 해양생물, 무척추동물로 확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랍스터, 게, 문어, 오징어 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상원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랍스터나 게 등을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삶거나 살아있는 상태에서 배송하는 것이 금지된다. 요리하기 전에 죽이거나 최소한 기절시켜야 한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서양인들이 동물을 먹기는 해도 살아있는 동물에게 고통까지 주는 건 피하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서양인들도 푸아그라를 만드는 과정처럼 잔혹한 행위를 하긴 하지만 어쨌든 눈앞에서 생명이 고통 받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지진 않으려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 방문 예능에서 산낙지, 산문어, 활전복 등을 보며 경악하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우린 그저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모르고, 해산물 맛을 몰라서 그런 거라고 가볍게 치부했지만, 사실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예능프로그램에선 심지어 수산물 시장을 방문해 살아있는 생물들을 보며 놀라는 외국인에게, 상인이 그 자리에서 손으로 살아있는 게의 등껍질을 떼어 보여주는 장면까지 종종 등장했다.
산낙지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 태도를 말해준다. 산낙지는 사실 죽은 낙지인데 굳이 이름을 산낙지라고 붙였다. 만약 살아있는 생물을 조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음식 이름을 산낙지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 조리에 아무 부담이 없고, 심지어 살아있는 건 싱싱해서 좋다고까지 생각하니까 죽은 낙지에 산낙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외국의 모든 문화가 옳은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들 문화를 모두 배울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식탁에서 생명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으려 하는 태도는 우리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산 생명을 찬 국물에 넣고 가열해 천천히 숨이 끊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밥을 먹을 것인가.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