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협상대상자 ‘카카오 그라운드X’
10개월간 2단계 걸쳐 시범 테스트
이주열 총재 “최소 2~3년 후 발행”
한국은행도 글로벌 추세에 맞춰 CBDC 도입 첫 발을 뗐다. 당장의 발행보다는 미래 지급결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은은 모의실험을 통해 디지털화폐 도입 여부를 가늠할 전망이다.
◆ 카카오와 맞손...가상환경서 테스트
한은은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 함께 CBDC 연구를 진행한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용역 입찰 공고를 내걸었다. 49억6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CBDC 상징성으로 국내 대표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시범 사업이라도 기술력을 입증받으면 본 사업에서도 우위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그라운드X는 기술평가와 가격평가에서 라인플러스와 SK주식회사 C&C를 제치고 가장 높은 점수(총점 95.3754점)를 받았다. 그라운드X는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자체 개발했으며, 클레이튼 빗썸에 상장시켰다. 그라운드X는 미국 블록체인 기업 컨센시스, 삼성SDS 자회사 에스코어, 컨설팅 기업 KPMG, 블록체인 스타트업 온더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이번 사업에 뛰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의실험은 오는 23일부터 10개월간 시행된다. 한은은 올해 말까지 1단계 실험을 완료하고, 내년 6월까지 2단계 시험을 마칠 예정이다. 1단계에서는 모의실험 환경 조성과 CBDC의 발행, 유통, 환수 등 기본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2단계에서는 이를 토대로 국가 간 송금, 오프라이 결제 등 확장기능을 검토한다. 개인정보보호 강화를 위한 신기술 적용방안도 연구한다. 한은은 CBDC 제조부터 발행, 참가 업체는 CBDC 활용 및 환전 등의 역할을 맡는다.
한은은 가상 환경에서 CBDC 제조 및 대금 결제까지 미리 테스트하겠다는 방침이다. 단, CBDC 상용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행은) 아무리 빨라도 2~3년은 소요될 것”이라며 “CBDC는 암호자산에 대한 대응 차원보다, 현금 수요가 급격히 줄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정적 시각도...“보완재로 안착할 것”
CBDC 상용화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한은이 당장 발행에는 선을 그었지만, 금융권에서는 CBDC 활성화에 따른 파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향후 CBDC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중앙은행에서 개인의 전자지갑에 곧바로 디지털 화폐를 공급, 은행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CBDC발행이 은행 예금의 대체재로 간주되면 은행의 탈금융중개화(금융기관 이탈)와 디지털 뱅크런(대량 인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디지털 화폐에 익숙치 않은 금융취약계층이 경제활동에서 더욱 소외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CBDC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발행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보고있다. 한국은 비현금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국가 중 하나이다. 국내 지급수단에서 현금 이용 비중은 2019년 기준 26.4% 수준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신용카드나 각종 페이 등 비대면 결제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CBDC로 넘어갈 요인이 약하다는 분석이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화폐가 있어도 약속어음이나 상품권, 포인트 등이 있는것처럼 CBDC가 나와도 보완재로 사용될 것”이라며 “디지털 화폐는 가상에서만 확인이 가능한만큼, 갑작스런 통신 중단 등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오프라인에서는 기존화폐가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낼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