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렵한 차체, 낮은 무게중심, 고성능 모터로 '질주본능' 충족
아이오닉 5 대비 이질감 적은 조작감‧인테리어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며 이제 전기차를 단순히 ‘돈 아끼려고’ 타는 차가 아닌 세상이 됐다. 이미 테슬라가 그런 판을 만들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아이오닉 5와 EV6를 앞세워 전기차에 좀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린다.
그 중에서도 EV6는 연료비 절감이나 지구 살리기 등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 혹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모델이다. 정확한 가격이나 사양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 하루 동안 2만명 이상이 사전계약에 몰릴 정도니 생김새부터 일단 먹고 들어간다고 봐야겠다.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 EV6를 지난 25일 시승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기아의 전기차 특화 복합문화공간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에서 경기도 포천시 삼정초등학교까지 왕복 약 140km의 고속도로와 시내도로, 와인딩 코스가 포함된 길을 달려봤다.
시승 모델은 EV6 롱레인지 어스 트림 4륜구동(4WD) 모델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기본형인 스탠다드보다 길지만 네바퀴 굴림 방식으로 2륜구동(441km) 모델 대비 다소 짧다. 여기에 20인치 휠을 장착해 403km까지 줄었다.
EV6의 디자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전체적인 실루엣만 보면 SUV인줄 속기(?) 쉽지만 실제 탑승감과 제원을 보면 SUV는 확실히 아니다. 전고가 1550mm로 비슷한 크기의 준중형 내연기관 SUV인 스포티지(1660mm)보다 훨씬 낮은 것은 물론, 한 차급 아래인 셀토스(1600mm)보다 낮다.
같은 E-GMP 플랫폼을 장착한 현대차 아이오닉 5(1605mm) 역시 EV6보다 전고가 높다. 다만 아이오닉 5가 일반 세단이나 해치백 수준의 지상고(땅에서부터 차 바닥까지 높이)를 갖춘 채 전고만 높아 실내공간을 극대화한 반면, EV6는 시트 포지션이 세단과 SUV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2박스 형태인데 SUV가 아니라면 해치백이나 왜건으로 분류함이 마땅하지만 기아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차종 구분을 붙이진 않을 것이다. 그런 차종들이 국내 시장에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EV6에선 디자이너들의 엄청난 고충이 느껴진다. 전고가 낮은 2박스 형태지만 절대 해치백 같아 보여서는 안되고, 거기다 공력성능은 최대한 높이면서 날렵한 고성능 이미지까지 가미해야 하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고민은 성공적인 성과물을 낳은 듯 하다. SUV처럼 다부져보이면서도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날렵해 보이는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이는 차가 바로 EV6다.
실내는 하이테크적이면서도 이질감은 크지 않다. 전반적인 인테리어나 운전석에서의 조작감 모두 익숙하다.
아이오닉 5가 평평한 바닥에 시트와 센터콘솔 등을 박아 넣고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는 콘셉트로 ‘미래형 이동수단’의 이미지를 강조했다면 EV6는 내부 구조의 융통성을 상대적으로 제한한 대신 좀 더 안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전형적인 자동차에 가깝단 의미다.
이를테면 아이오닉 5는 시동(전원) 버튼과 전자식 변속장치를 핸들 주변에 배치하고 센터콘솔은 순수하게 수납 용도로, 심지어 위치까지 옮겨가며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놨으나, EV6는 센터콘솔에 시동버튼과 변속 다이얼을 배치해 운전자의 암레스트 기능으로 못 박아 놓았다. 물론 위치 이동도 불가능하다.
대신 암레스트 하단은 비워놓고 큼지막한 트레이를 설치해 손가방 등을 놓아두기 편하도록 했다.
EV6는 뒷좌석도 고정식이다. 아이오닉 5와 같이 레일이 설치돼 앞뒤로 옮기지 못하는 대신 좀 더 안락한 느낌이다. 등받이 각도 조절도 가능하다. 물론 다른 SUV 차종과 마찬가지로 등받이를 접어 적재공간이나 차박 공간을 만들 수는 있다.
기아 고급차 라인업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커브드 디스플레이 등 고급 사양들도 EV6를 낯설지 않은 차로 만들어준다. 이 차에 적응하기 위해 굳이 엄청나게 큰 변화를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이점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뒷좌석 중간을 가로지르는 터널이 없어 한층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고, 시트 하단에는 이 차를 이동식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V2L(Vehicle to Load)용 220V 소켓도 있다.
EV6의 달리기 실력은 웬만한 내연기관 고성능차 이상이다. 밟는 족족 반응하는 가속페달은 시승 시간 내내 큰 만족감을 제공해줬다. SUV같이 생겼지만 SUV답지 않은 전고와 날렵한 실루엣으로 인해 속도를 높일수록 착 가라앉는 느낌이 일품이다.
전기모터에 전원이 전달됨과 동시에 최대 토크로 차체를 움직여주니 시내 도로에서는 멈춤과 움직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가 없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차도 가뿐히 제치고 나갈 만큼 사나운 본색을 드러낸다.
바닥에 넓게 깔린 배터리는 차체를 아스팔트에 붙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낮은 무게중심으로 소요산 인근의 와인딩 코스를 달릴 때도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롱레인지 모델로도 성능은 충분해 보이지만, 이보다 한층 뛰어난 퍼포먼스를 낸다는 GT모델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GT모델의 0-100km/h 가속시간은 3.5초로 국내에서 출시된 모든 자동차를 통틀어 최단 기록이다.
의외였던 점은 전통적인 전기차와 고성능차, SUV들에게 공통적으로 결여된 ‘승차감’을 EV6는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비 상태가 불량한 국도의 심한 요철이나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도 차체가 노면 충격을 굉장히 부드럽게 흡수해준다. 고급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이다.
EV6는 전기차 시대에도 달리는 재미를 놓칠 수 없는 드라이버를 위한 좋은 선택지로 평가된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초급속 충전기가 깔린다면 장거리 여행을 즐기기에도 적합해 보인다. 물론 패밀리카나 캠핑, 차박 용도를 원한다면 그 역할도 해낼 수 있다. 잘 생겼으니 도심 출퇴근용으로도 어울린다.
이날 시승한 EV6 롱레인지 어스 트림 가격은 5895만원이다. 여기에 하이테크, 선루프, 메리디안사운드, 빌트인캠, 20인치휠 등의 옵션을 장착해 총 6215만원의 구성이다.
▲타깃 :
- 전기차라 우습게보고 추월하려고? 코를 납작하게 해주마!
- 전기차, 스포츠 쿠페, SUV 다 갖고 싶지만 보유 능력은 한 대뿐이라면.
▲주의할 점 :
- SUV처럼 생겼지만 생각보다 지상고가 낮음. 이 차를 끌고 오프로드로 뛰어들 생각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