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가석방 출소 이후 공식 일정 없이 정중동 행보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 발표로 첫 현장 경영 '주목'
내달 말 추석 연휴 활용해 美·中 방문 가능성 제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총 24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음 수순이 될 현장 경영 행보가 언제 어디서 이뤄질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3일 가석방 출소 이후 보름이 지나도록 공식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지 않으며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4일 향후 3년간 투자와 고용에 총 24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매머드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정작 경영 행보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출소 후 공식적인 일정은 19일과 26일 삼성물산 합병 의혹 재판에 출석한 것을 제외하면 26일 오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고(故)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조문차 빈소인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한 것뿐이다.
지난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자마자 삼성서초사옥으로 향해 주요 경영진을 만나고 이어진 사흘간 광복절 연휴 기간 내내 출근과 화상회의 등을 통해 국내외 주요 경영진들과 다양한 사업 현안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예상됐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가석방 특혜와 취업제한 위반 논란을 제기한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내달 첫 현장 경영 행보 가능성 높아...반도체? 바이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만큼 내달에는 현장 경영 행보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먼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 등은 사전에 알수 없겠지만 이번 투자 발표때 선정한 4대 전략산업(반도체·바이오·차세대 통신·신성장 IT) 관련 현장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출소 후 첫 현장 경영이라는 상징성과 정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 허용 이유로 언급한 ‘국익’을 감안하면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반도체와 바이오 관련 사업장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건설 중인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사업장인 평택사업장 제 3공장(P3) 현장이나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천 송도 공장 방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첫 현장 경영 행보와 맞물려 이번 추석 명절 때 해외 출장길에 오를지 여부도 관심사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설이나 추석 명절 연휴를 이용해 글로벌 해외 사업장을 방문하는 현장 경영 행보를 펼친 바 있다.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시작한 이후만 봐도 2016년 설에는 미국 출장길에 올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추석에는 인도를 방문,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만남을 가졌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재판과 구속으로 명절 현장 행보를 하지 못하다 지난 2019년 설 연휴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추석에는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도심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하며 활발한 현장 경영을 펼쳤다.
지난해의 경우, 연초 설에는 브라질을 방문해 중남미 가전사업을 점검했고 가울에는 추석(10월1일) 직후에 1주일간(10.8~14일) 유럽 출장을 다녀오는 등 명절 현장 방문은 이 부회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내달 21일 추석 연휴를 전후해 해외 사업장 방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올 초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으로 재구속되면서 설 연휴를 건너뛴 터라 가능성도 크다.
현재 매주 진행 중인 삼성물산 합병 의혹 재판에 이어 내달부터는 프로포폴 관련 의혹 재판도 병행해야 하지만 추석 연휴(9.20~22)로 인해 재판이 한 주 쉴 수 밖에 없어 재판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점도 해외 출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명절 해외 출장 다시 시작되나...상징성·시급성·국익 고려
만약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면 국내와 마찬가지로 반도체·바이오 분야 사업장 또는 관련이 있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현재 미국 현지 주 정부들과 논의가 진행 중인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이 건설되는 지역이 유력 후보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신규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을 발표했지만 생산 공장 설립 지역을 아직 최종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 부회장이 부지를 최종 확정한 뒤 현지로 출장길에 오르는 수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파운드리 1위 업체인 타이완 TSMC가 미국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종합반도체 1위 경쟁을 펼치는 미국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과 함께 업계 4위인 글로벌 파운드리 인수를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터라 대응 차원에서도 적절하다.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가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인텔 낸드 사업을 인수하기로 한데 이어 업계 3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2위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하는 등 낸드 시장은 향후 재편의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가 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위탁한 미국 모더나 본사도 가능한 곳으로 꼽힌다. 코로나19 백신의 원활한 공급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사안인 만큼 ‘국익’을 이유로 풀려난 이 부회장의 역할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장기전 양상이 되고 있는 백신 확보전에서 이 부회장의 폭 넓은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 활용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정부가 화이자 백신을 추가로 확보하는 과정에서 정부 협상단과 화이자 고위 경영진간 소통을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면서 백신 도입이 급진전되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모더나와의 협상을 통해 국내 초기 위탁 생산분의 일부를 국내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타진하거나 백신의 국내 공급 시기를 앞당기고 물량을 확대하는 등 수급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만큼 국내든 해외든 현장 경영 행보가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며 “장소는 출소 후 첫 행보라는 상징성 뿐만아니라 사안의 시급성과 국익 기여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