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604조원 돌파
국가채무 1068조원 넘어
차기 정부·미래 세대 부담
정부가 사전 예고대로 600조원을 넘어서는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을 이유로 내년까지 확장재정 기조 유지를 주문했고 기획재정부는 이에 맞춰 올해보다 8.6% 늘어난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31일 604조4000억원 규모 ‘2022년도 예산안’을 확정·발표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대해 “포용적 경제회복·도약과 사람 중심 선도국가로 대전환을 기본방향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더 강한 경제회복과 글로벌 강국 도약 ▲포용적 회복과 지역균형발전으로 양극화 대응 ▲탄소중립·디지털전환 등 미래형 경제구조 대전환 ▲국민보호 강화와 삶의 질 제고에 중점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방역 종식을 위한 지원 소요와 우리 경제 회복·상생, 도약을 지원하고자 하는 예산”이라며 “최근 세수 확보 등을 토대로 경제 회복, 세수 증대, 건전 회복이라고 하는 재정의 선순환 구조 착근이라는 점을 깊이 고려했다”고 말했다.
일자리 예산, 공공일자리 늘고 민간 지원 줄어
정부가 경제 회복과 코로나19 극복을 이유로 확장 재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번 정부 들어 예산이 계속 급증했다는 점에서 재정 건전성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본예산은 2018년 7.1%를 시작으로 2019년 9.5%, 2020년 9.1%, 2021년 8.9%까지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예산은 해마다 크게 늘었지만 실업률과 고용률 등 일자리 지표는 제자리를 맴돌면서 예산 효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을 올해 30조1000억원에서 내년에는 31조3000억원으로 늘렸지만 늘어난 예산 상당 부분이 공공부문 일자리에 집중되는 형태다.
정부는 노인·장애인 일자리 92만 개, 저소득층 자활근로 6만6000개 등 취업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를 105만 개로 늘린다는 계획인데 질 좋은 일자리 확충과는 거리가 멀다는 전문가 지적이다.
오히려 민간 부문 고용을 뒷받침하는 고용장려금과 직접일자리 예산은 2000억원 줄었다. 특히 내년도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6000억원에 그친다. 올해보다 8000억원이나 줄어든 금액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휴업·휴직 수당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내년에도 코로나19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데 예산을 절반 이상 줄인다는 건 일자리 창출을 강조해온 정부 주장과도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대남’ 민심 잡기 위한 20조원 규모 청년종합대책
일자리 정책에 중장년이 빠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예산안 가운데 중장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정책은 ‘중장년 새출발 크레딧’ 뿐이다. 내년에 신설하는 이 사업은 50억원을 들여 5000명의 중장년 재취업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반면 2030세대 등 청년층을 위한 지원 규모는 대폭 늘었다. 이를 놓고 ‘이대남(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청년층의 반(反)민주당 성향이 짙어지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특단의 조처를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20조원 이상 투입되는 청년 종합 대책에는 연 소득 5000만원 이하 청년에 대한 무이자 월세 대출, 군 장병 봉급 10% 인상 및 전역 시 최대 1000만원 목돈 지급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중소·중견기업 대상 청년채용장려금 신설과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재직 청년 교통비 5만원 지원 연장 등도 청년층 관심을 끌기 위한 예산으로 꼽힌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전역 장병에 대한 현금 지원을 대폭 늘린 것은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20대 남성을 겨냥한 전형적인 선심성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5개월 남은 정부의 확장 재정…차기 정부 부담 가중
정부는 확장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면서 재정건전성도 놓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내년 경기 회복에 따른 세수 호조를 전망하면서 지출을 늘려도 재정건전성이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정부와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만으로 급격히 늘어난 지출 규모를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결국 세출 규모를 조절해야만 늘어난 세수도 실질적인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6년 626조9000억원이던 나랏빚은 이번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60조2000억원으로 늘었고 2018년 680조5000억원, 2019년 723조2000억원에 이어 지난해 2020년 846조9000억원까지 매년 증가했다.
내년도 국가채무는 최초로 1000억원을 초과한다. 1068조3000억원에 이르는 내년도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0.2%를 차지한다.
늘어난 빚은 결국 다음 정부에 짐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문재인 정부 임기는 내년 5월 9일까지다. 결과적으로 재정 확장 ‘열매’는 문재인 정부가 얻고 뒷수습은 차기 정부 몫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채무 증가는 국가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피치와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빼놓지 않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 건전성 악화는 지난 4년간 계속 축적됐고 결국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게 적지 않은 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도 “국가 지출을 늘리는 것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세수 확대 방안은 없이 지출만 늘어나는 건 미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확장 예산안에 우려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