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진영 다르면 위아래도 없는 홍위병들의 의도적 도발
‘가카새끼’ ‘GSSS’ ‘장수 위험’ 발언자 학력 나이 공통적
필자가 1980년대 중반 서울 관악경찰서에 출입하던 때 일이다.
5공 막바지, 관악서 담당 사회부 경찰 기자는 곧 서울대생들의 시국 선언과 시위 전담이기도 했다. 관악산 밑에 자리 잡은 캠퍼스여서 봄이 한 달은 늦게 오는 듯 한 그곳에 오전에는 두툼한 파커를 입고 올라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들의 요지를 적고, 오후에는 전경들의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며 한판 붙는 일과를 취재하던 어느 날이었다.
대학본부 근처 한 건물 앞에 운동권 학생들 몇 명이 부동자세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 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 한 명이 욕설을 하며 비키라고 했다. 필자는 10살 가까이 어린 대학생이 그러는 순간 고함을 쳤다.
“야 임마, 넌 집에 형도 없냐?”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다는 학생들의 버르장머리가 이랬다.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으니 그것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낳은 무례와 폭력이다. 욕을 한 그 학생의 학번은 아마 85, 86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 50대 중반 나이다.
이 학생보다 5년가량 늦게 이 대학 법대에 들어와 이른바 진보 성향 법조인이 된 인사들의 패륜 발언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심히 착잡하게 한다. 102세 철학자이자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형석에게 ‘이래서 나이를 많이 먹는 건 위험하다’고 말한 정철승은 1970년생이다. 여비서 성추행 관련 피소 후 자살한 전 서울시장 박원순 유족의 공격적 변호사로서 51세, 한창때다.
지난달 말 ‘언론재갈법’ 강행 처리가 일단 무산되자 국회의장 박병석에게 ‘개새끼’ 발음의 영문 표기 첫 글자들 ‘GSGG’를 날린, 판사 출신의 민주당 초선 의원 김승원은 1969년생이다. 이들과 함께 떠오르는 또 한 사람 대통령 이명박을 패러디하며 ‘가카새끼 짬뽕’이라고 한 변호사 이정렬도 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판사나 변호사 직업을 가졌거나 갖고 있는, 법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다. 학벌로나 직업으로나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본받게 하려는 엘리트들인데... 어쩌다 이런 패륜 발언이나 하는, 시정잡배들보다 못한 인격을 보이고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1920년 북한에서 태어난 김형석은 20대에 김일성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고, 그의 공산 치하에서 2년간 살다 목숨을 걸고 월남한 탈북자다. 그는 김일성과 공산당의 실체를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하고 몸으로 겪은, 현재 거의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한반도의 산역사요 증언자다. 진보좌파 성향 변호사로 분류되는 정철승은 이런 경험과 소신을 가진 반공주의자 노철학자가 빨리 사라지길 바라서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게 됐을 것이다.
그는 김형석이 이승만 정권 때부터 교수 생활을 하며 반민주, 반인권 비판을 해본 적이 없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김형석은 정철승 같은 사람들이 자랑해 마지않는 시위에도 4.19 때 연세대 교수들 대표로 나섰던 인물이다. 유신 시절에도 박정희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학교 안팎에서 줄곧 해왔던 분임을 그의 강의와 강연 현장에 여러 차례 앉아 있었던 필자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철승, 김승원, 이정렬 등은 3공, 5공 때 민주화 투쟁으로 투옥된 ‘훈장’을 단 투사들만 존경하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수준의 단순하고도 획일적인 사고와 시각이다. 나라와 국민에게 봉사하고 기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매우 기본적인 상식을 이들은 모르거나 무시하려 든다.
위 세 사람이 읽지 않았을 듯 한 김형석의 명저가 많다. 이른바 베스트셀러라고 평가되는 책들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그는 이런 주옥같은 인생론, 수상록, 철학서 등으로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더 의미 있게, 가치 있게 인생을 살자는 다짐을 하도록 했다. 그는 책을 가지고 독재 정권들에 화염병을 투척한 셈이다.
삼중당에서 펴낸 300원짜리 <죽음에 이르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같은 문고판 에세이집은 필자가 고둥학교, 대학교를 다니던 70년대에 독서 좀 한다는 젊은이들이 안 읽으면 간첩이었던, 일종의 면학 또는 생활의 지침서였다. 필자는 김형석을 포함한 당시 철학자, 시인, 소설가 등의 수필집이 운동권이 교과서로 삼은 이념 서적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한민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런 교양 도서들을 자양분 삼아 사회로 진출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모범적인 남녀들이 산업 역군이 되고, 5공 말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박수를 보낸 ‘넥타이 부대’가 된 것이다. 정철승 부류는 ‘민주화’라는 세 글자를 말하고 써야만 나라와 국민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으로 보는, 수학은 못하고 산수만 할 줄 아는 10세 전후 어린 아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집권 세력 대다수가 그런 수준과 정신 연령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싸가지 없음을 용기로 잘못 알고 있는 천박한 엘리트들... 정치 진영이 다르면 위아래도 없는, 홍위병 같은 의도적 도발을 일삼는 이런 자들을 우리가 언제까지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만 하는가!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