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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물 ④] "변호사 없어도 돼유~"…판사들이 진땀빼는 까닭은?


입력 2021.09.10 05:02 수정 2021.09.09 22:20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노령 피고인들 법정 출석해 막무가내 '나 홀로 변론'…"국선 변호인이 뭔가요?"

누구나 방어권 보장받아야 하지만 법률지식 없어 불이익 겪기도

판사. ⓒ게티이미지뱅크

법률 지식이 전혀 없는 노령의 피고인들이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법정에 출석해 변론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재판부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아무런 증거 자료 없이 "억울하다"며 하소연만 하고, 판사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진땀을 빼는 해프닝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공중밀집장소추행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검찰에 따르면 60대 남성 A씨는 지난 5월 지하철에서 피해 여성의 엉덩이와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추레한 차림에 허리가 반쯤 굽은 A씨는 홀로 법정에 들어왔다. 재판장이 변호인 선임 여부를 묻자 A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변호사 없어도 돼유"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은 피고인이 누범 기간에 범죄를 저지른 탓에 유죄 판결 시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이 선고된다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변호인 없이 재판 받겠는가, 증인 신문을 혼자서 다 할 것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A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할래요"라고 답했다.


이어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을 묻자 A씨는 "맞지 않다. 나는 그날 술을 4병 마셨는데 2개는 마시고 하나는 들고 있었다"며 "손으로 피해자를 만졌다고 하는 데 그런 짓은 안 한 것 같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피고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재판장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변론을 잘하고 증인 신문을 잘해야 하는데 꼭 혼자 하고 싶나"라고 거듭 물었고, A씨는 여전히 "네"라고 대답했다. 그 까닭을 묻는 질문에는 "제가 잘못한 죗값을 받겠지만, 너무 억울한 것 같다"는 동문서답이 나왔다.


결국 재판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A씨에게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기로 했다. 재판장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전문가와 잘 상의해 보라"고 타일렀고, A씨는 재판장에 연신 인사를 올린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지난 7일에는 무고죄 혐의를 받는 60대 여성 B씨가 홀로 재판에 출석했다. 검찰에 따르면 B씨는 스스로 목에 상처를 입힌 뒤 '피해자가 자신에게 상해를 가했다'며 경찰에 허위로 신고했다.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B씨는 손사래를 치며 "아유, 당연히 아니죠"라고 대답했고, 법정에는 싸늘한 기류가 흘렸다. 변호인이 없는 B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국선변호인 제도를 알고 계시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B씨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재판장은 B씨에게 국선변호인을 신청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전경.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달 20일에는 60대 여성 요양보호사 C씨가 홀로 피고인석에 올랐다. C씨는 홧김에 동료 보호사의 어깨를 밀쳐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지만, C씨는 "너무 억울해서 재판까지 왔다. 나는 정말 피해자를 때린 적이 없다"며 무죄를 간절하게 호소했다.


재판장은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엔 증거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며 국선변호인 선임을 권유했다. C씨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에 응하자 재판부는 "변호사와 말씀 잘 나누고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시라"며 부드럽게 타이르고 C씨를 돌려 보냈다.


우리 헌법은 피의자·피고인이 재판에서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인 '방어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법률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닌 만큼 방어권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하진규 변호사는 "형사재판은 검사가 제출하는 수사증거 서류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증거인부'가 특히 중요하다"며 "법률 지식이 거의 없는 노령의 피고인들은 이 단계부터 불이익을 겪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하 변호사는 이어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려고 해도 그것을 끝끝내 거부하는 피고인도 많다"며 "재판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피고인들이 재판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잦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 누구나 무료로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지원 정책을 마련해두고 있다"며 "다만 모든 국민이 빠짐없이 법률 지식을 갖추고 방어권을 행사하기엔 한계가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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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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