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높은 유류세 인하에도
전문가 “물가 억제 효과 낮을 수도”
농축수산·공업·서비스 등 복합 요인
전방위적 대책 아니면 효과 반감
정부가 유류세 20% 인하 방침을 밝힌 가운데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유류세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인 추가 대책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7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고 “국민과 기업, 근로자들 동절기 유류비 부담완화를 위해 내년 4월 말까지 약 6개월간 유류세는 20% 인하, 같은 기간 LNG 할당 관세는 0%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최대한 빠른 시일에 시행령 개정 등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당장 국민 체감물가가 피부에 와닿게 인하되고, 연간 물가수준이 2%대 초반에서 안정관리되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유류세 인하로 물가안정을 기대하는 정부와 달리 전문가들은 추가 조처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예상만큼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견해다. 유류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가는 크게 농·축·수산물과 공업 부문, 서비스, 공공요금 부문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농·축·수산물과 공업제품, 서비스 부문 비중이 크다. 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요금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낮다.
8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농·축·수산물 경우 전년동월대비 7.8% 상승했고 공업제품은 3.2% 올랐다. 서비스 부문에서도 1.7% 상승해 전체 물가를 2.6% 끌어올렸다. 전기·수도·가스는 0.1% 오르는 데 그쳤다.
농·축·수산물은 서민 체감물가에 가장 민감하게 작용해 지난해 6월부터 1년 넘게 지속 상승하며 물가 인상을 이끌고 있다. 농작물은 기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수확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공급 확대로 가격을 낮추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달걀과 같이 정부가 수입 물량을 늘려도 실제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농·축·수산물 생산 주요 인력인 외국인 근로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우리나라를 빠져나가면서 일손 부족까지 겹친 상태다.
공업부문 또한 코로나19로 가정 내 생활이 늘면서 노트북과 가전제품 등 소비가 많아지면서 가격이 오르는 모습이다.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 반도체 등 글로벌 원자재 부족 현상까지 겹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서비스업은 내수 활성화 대책이 물가 인상과 충돌하고 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상황에 보복 소비가 늘고 최근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단계적 일상회복)’ 기대감 등으로 소비가 회복되면서 물가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다양한 내수진작 정책을 펼치면서 물가 인상 요인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유류세 인하 정책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33% 끌어내릴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국제유가 상승이 유류세 인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배럴당 80달러대 초반을 기록 중이다. 일각에선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리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관측한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유류세 인하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낙관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율 인하를 통해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유가가 전 세계적으로 오르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유류세 인하를 언급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류세 인하와 함께 농·축·수산물, 공업제품, 서비스업 등 다방면에 걸친 대책이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초 식료품에 머물던 가격 상승이 최근 들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농·축·수산물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대책들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또한 “물가가 주로 원자재, 농·축·수산물 등 공급 측 요인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가 수입 등을 활용해 공급 안정 대책을 세우는 것은 불가피하고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