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만난 첫 느낌은 ‘수다쟁이’였다. 말도 길고 장황하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청계천 판자촌 유년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공약의 내용을 물으면 초임 공무원 시절 경험담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일수다. 투머치토커하면 떠오르는 전 야구 선수 박찬호 씨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말씀이 좀 많으시죠?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라며 김 전 부총리 측 관계자들도 멋쩍게 웃는다. 꼭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이나 인터뷰가 아니라 평소에도 비슷한 모양이다. 기획재정부 공직자로 근무하면서, 어려운 경제정책들을 기·승·전·결에 맞춰 자세히 여러 번 설명하다 보니 생긴 버릇이라고 한다. 지인들과의 신변잡기 대화에서조차 “그래서 핵심이 뭐야”부터 묻는 기자들 입장에서야 답답할 노릇이다.
농담처럼 표현했지만, 김 전 부총리가 겪은 삶의 여정은 사실 간단치 않다. 청계천 판자촌에서 광주 대단지(지금의 성남)로 강제 이주한 이야기, 4남매의 맏이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청년 시절, 어렵게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고졸 출신이어서 받아야 했던 설움 등등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가난한 소년공’ 출신이라고 소개되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인생 역정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지나온 시절을 다 이야기하려니 빨리 지나가는 시간만 아쉽다.
‘고집’도 쇠심줄이라고 한다. 좋게 표현하면 ‘소신’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소신과 원칙’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조국 사태 이전까지는 김 전 부총리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을 대변하며 청와대를 등에 업었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정면 대치했던 이가 김 전 부총리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결 구도는 당시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기존 여야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양강 구도 해체를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일견 닮았다. 어찌 보면 현재 대한민국 정계를 주름잡는 유력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시대정신’의 교집합인 셈이다.
문제는 인지도가 낮고 선명성이 약하다 보니 양측 모두에서 공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문재인 정부의 배신자’로,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역자’로 일컬어지는 게 대표적이다. 또 최근 1호와 2호 공약을 발표했지만, 피상적으로 보면 기존 정치권 공약과 차별성이 거의 없다. ‘공무원 철밥통 깨기’는 이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발표한 바 있고, ‘5개 서울 만들기’도 여야의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물론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다. 보수와 진보 정부에서 각각 고위 공직자로 근무하며 수많은 ‘개혁’들이 진영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좌초되는 경우를 수차례 목도했던 그다. 양강 구도를 극복해야 대한민국이 나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여야 모두 주장하는 ‘혁신성장’ ‘규제개혁’ ‘선도경제’ 등도 실은 노무현 정부 당시 김 전 부총리가 만들었던 ‘비전 2030’에 있었던 내용들이다.
김 전 부총리 측은 “표지와 제목은 같을 수 있지만, 디테일은 다르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공직생활 경험에서 우러난 정책으로 현실적 고민까지 담고 있다는 점을 봐달라”고 호소한다. 진영대립 구도를 뚫고 ‘양강 체제 극복’이라는 진정성을 국민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오롯이 김 전 부총리의 몫일 터다. 그의 말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