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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⑪] 배우 박희순의 선글라스


입력 2021.11.24 08:29 수정 2021.11.24 08:2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박희순. 드라마 '마이네임' 최무진 역 ⓒ출처=네이버 블로그 spdhtjzmf

박희순은 눈빛으로 많은 얘기를 하는 배우다. 아이러니하게도 박희순은 그 중요한 표현 수단을 자주 가린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짙은 선글라스를 종종 낀다. 영화 ‘마녀’(2018)와 드라마 ‘Dr. 브레인’(이하 ‘닥터브레인’)에서 선글라스 쓴 모습도 멋지지만, 드라마 ‘마이 네임’에서의 최무진 착용 샷은 정말이지 끝내 준다.


생각해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끼는 것도 아니다. 저 멀리는 12년 전 영화 ‘10억’의 제작보고회 때, 8년 전 ‘용의자’ 쇼케이스 레드카펫을 밟을 때 선글라스로 멋을 냈다. 5년 전 영화 ‘올레’의 제작보고회 때도, 4년 전 영화 ‘남한산성’으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해운대 야외무대에 섰을 때도, 3년 전 영화 ‘마녀’와 2년 전 ‘광대들’의 관객 무대인사 때도 박희순은 선글라스를 썼다. 지난해 예능 ‘여름방학’에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많이 썼을 것이다.


영화 ‘작전’(2009)에서도 선글라스를 썼지만 “오케이, 거기까지!”를 외치던 조폭 출신 투자회사 대표 황종구는 안경 쓴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영화 ‘가비’(2012)에서 고종이 신문물인 안경을 처음으로 쓰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배우 박희순은 이래저래 안경과 함께 기억되는 장면들이 유독 많다.


'닥터 브레인'의 신비로운 인물, 이강무 역 ⓒ드라마 홈페이지

다시 선글라스로 돌아가서, 이건 풀리지 않는 의문인데. 배우 박희순에게 있어 처음에 말했던 물기 머금은 눈빛, 그리고 거친 저음에도 발음이 또렷한 딕션은 중요한 특징인데. 양대 표현 요소 중 하나인 눈빛을 가려도 ‘거짓말처럼’ 색유리 너머 박희순의 눈빛이 느껴진다. 눈은 보이지 않아도 눈빛의 강도와 온도는 느껴진달까. 볼과 턱, 코와 콧구멍마저도 연기에 쓰여서일까. 단순히 외양적으로 잘 어울려서만이 아니라 선글라스로도 가려지지 않는 눈빛의 느낌 때문에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배우’ 하면 박희순이 먼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이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대해, 웨이브(wavve) 드라마 ‘닥터브레인’의 인기 속에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박희순에게 물었다. 박희순이 연기한 경찰 출신 민간조사관 이강무 역시 줄곧 선글라스를 낀다.


“‘마이 네임’에서나 ‘닥터브레인’에서나 선글라스는 멋을 내려고 끼는 건데, 그렇게(선글라스 너머로도 눈빛이 느껴진다고) 말씀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선글라스라는 게 기본적으로 감정을 감추려고도 끼고 비밀을 내색하지 않으려고도 끼죠. 무조건 쓰는 건 아니고 맥락과 상황에 맞는가를 생각합니다. 이강무의 경우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빛을 가린다는 측면에서도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지운 감독님과 선글라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원작 웹툰에서도 민머리에 선글라스를 쓰는 설정이기도 하고 영화로 가져와도 실보다는 득이 크다는 생각에 쓰게 됐습니다.”


가벼운 듯 시작한 답변은 진중하게 끝이 났다. 다시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선글라스 모델 제의가 들어온다면 할 생각이 있나요?


“당연히 해야죠, 하하하.”


영화 '마녀'의 미스터 최 역, 검은 장갑 속에 감춰진 비애 ⓒ이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배우 박희순은 나지막하게 얘기해도 무엇을 말하는지 또렷하게 들린다. 종종 문장의 끝을 사라지는 아지랑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내용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아님에도 전달력이 좋다. 목소리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있어요. 성대가 긁힌 소리라고 할까, 거친 소리가 나다 보니. 해서, (관객이나 시청자께) 잘 들리지 않을까 봐 입에 볼펜 물고 발음 연습도 하고 발성 훈련도 하고 평소 연습하곤 합니다. 잘 들린다고 하시니 감사하네요.”


생각지 못한 콤플렉스 발언. 배우 박희순의 냉철한 객관화에서 겸손이 읽혔다. ‘닥터브레인’의 이강무를 향한 시청자 사랑에 대해서도 OTT(Over The Top, 인터넷TV) 플랫폼의 장점을 언급했다.


“영화보다 배우의 서사, 역할의 서사가 살려지고…, 드라마의 늘어지는 군더더기는 없고, 그 중간 지점에 OTT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일 영화였다면 이강무의 서사는 많이 잘렸을 거예요. OTT라 저만의 서사가 할애되고, 저의 동작이나 감정 표현에도 시간이 주어지는 장점이 있어서 많은 분이 관심을 보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색유리 너머 눈빛, 배우 박희순 ⓒ

말의 서두든 말미에든 ‘감사’를 말하는 배우 박희순은 제2의 전성기라 할 만한 인기에 대해서 경계했다.


“SNS에 한마디 쓴 제 글이 기사화돼 깜짝 놀랐어요. 당분간 ‘잠수’ 탈 예정입니다(웃음).”


그 인기의 ‘덕’으로, 영화 ‘밀정’(2016)에 이어 5년 만에 재회한 김지운 감독의 ‘공’도 잊지 않았다.


“‘밀정’ 때 카메오(특별출연, 김장옥 역)인데 열흘을 뛰어다녔어요. 100일이라도 뛰어다닐 테니 좋은 역 주시라 했는데, 짧게 쓰고 버리셨어요(웃음을 참으며). 이번에도 누가 못하게 돼서 갑자기 들어온 것으로 알아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 박희순의 말은 직접 들어야 맛이 산다. 유머 감각이 풍부한데, 골계미가 있어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재치다. 웃음을 참으면서도 김지운 감독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 말하다 결국 ‘감사’로 마무리하는 유머. SNS 잠수는 몰라도 작품에서의 잠수는 시청자와 관객의 이름으로 허하지 못하겠다. 배우이자 사람 박희순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작품을 기대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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