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 지킬 나’→‘멜랑꼴리아’
흥미로운 설정의 멜로 드라마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김지운 작가는 2012년 SBS 주말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공동 집필하며 데뷔했다. 결혼을 일생일대의 비즈니스로 삼은 여자와 속물근성을 경멸하는 남자의 로맨스를 무겁지 않게 풀어냈던 김 작가는 ‘하이드 지킬, 나’를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다. 한 남자의 전혀 다른 두 인격과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삼각 로맨스로 설렘을 유발했다.
이후 휴먼 메디컬 드라마 ‘의사 요한’을 거쳐 tvN 드라마 ‘멜랑꼴리아’를 통해 사제 간의 따뜻한 연대를 그려내고 있다. 수학과 사랑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소재를 통해 색다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 평범한 사랑 NO…설정부터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
가난한 여성 주인공이 재벌 2세를 만나,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뤄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때 멜로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였다. ‘청담동 앨리스’가 방송된 2012년에도 다르진 않았다.
그러나 ‘청담동 앨리스’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영리하게 활용하며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를 탄생시켰다. 우연히 만난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지고,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는 모습은 흔히 보던 주말 멜로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공 세경(문근영 분)은 어려움에도 씩씩하게 나아가는 기존의 주인공들과 달리, 부잣집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겠다는 욕망을 대놓고 드러낸다.
처음에는 ‘비호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김 작가는 세경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설득력을 높였다. 세경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내는가 하면,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과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돌아보게도 했다.
전혀 다른 인격을 지닌 남자의 두 인격과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지킬 하이드, 나’ 또한 흔히 보던 설정은 아니었다. 서진(현빈 분)과 하나(한지민 분)의 로맨스를 바탕으로, 하나가 서진의 또 다른 인격 로빈과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과정이 함께 담겨 색다른 분위기의 멜로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새로운 갈등이 추가된 만큼 한층 풍성한 전개로 흥미를 유발했다.
현재 방송 중인 ‘멜랑꼴리아’를 통해서도 비운의 수학천재 백승유(이도현 분)와 선생님 지윤수(임수정 분)의 애틋한 감정을 ‘수학’을 통해 전달하며 뻔하지 않은 멜로를 선보이고 있다. 사제 로맨스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시청자들도 있지만, 늘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보는 이들을 설득시켰던 김 작가가 이번에는 어떤 과정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 상처 받은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청담동 앨리스’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표방하면서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결핍이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담겼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 때문에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하겠다는 욕망을 갖게 된 세경, 부모에게도 과거 연인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해 시니컬해진 승조.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뭉클하게 그려졌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의 이야기 안에 로맨스를 녹여냈던 SBS 드라마 ‘의사요한’에서도 김 작가의 따듯한 시선이 드라마의 매력을 높였다. 선천성 무통각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차요한(지성 분)이 강시영(이세영 분)을 만나 따뜻함을 알게 되고, 진정한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던 것. 여기에 미스터리한 통증의 원인을 찾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며 의학 드라마의 면모까지도 놓치지 않았었다.
‘멜랑꼴리아’의 백승유도 아픔을 가진 천재다. 가슴 아픈 상처로 인해 수학을 외면해버린 그가 지윤수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질 예정이다. 승유가 어떤 성장을 이뤄내게 될지, 김 작가가 이 과정을 통해 또 어떤 여운을 남기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