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서 왈츠·하녀 역 연기
2022년 2월 2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무용 전공자였던 이수현은 2001년 ‘스팅’을 시작으로 뮤지컬 배우로 20년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꿈만 같았던 무대에 뮤지컬 배우로서 설 수 있었던 건, 그의 대학교 교수이자 뮤지컬계 대표 안무가인 서병구 감독 덕분이었다. 그를 발견한 건 서 감독이지만 20년을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꾸준한 노력과 겸손한 마음 덕분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몬테크리스토’ ‘모차르트!’ ‘웃는 남자’ ‘엘리자벳’ ‘브로드웨이 42번가’ ‘아이다’ ‘시카고’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대작들에 연이어 출연하는 것은 물론 다수의 작품에서 안무캡틴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레베카’에서도 그는 후배 앙상블 배우들을 이끄는 안무캡틴인 동시에 무대에선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관객들을 극으로 이끄는 배우로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내고 있다.
-‘레베카’와는 처음 연을 맺게 된 거죠?
네, 처음입니다. 감사하게도 국내에 몇 안 되는 로맨스가 있는 서스펜서 뮤지컬 ‘레베카’에 합류하게 됐죠. 저를 좋게 봐주셔서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고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하녀와 왈츠 파트를 맡고 있죠.
맞아요. 하녀 역할로 나올 때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로 캐릭터를 잡았습니다. 이름은 ‘페니’로 지었고요. 실제 맨덜리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어리바리한 막내 하녀로 관객들에게 보였으면 합니다. 또 왈츠 커플로 나올 때는 누구보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워낙 정교하고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왈츠 장면을 연기하시다 보면 부담이 될 것도 같은데요. 베테랑 배우임에도 긴장이 되나요?
처음엔 엄청 부담되고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이젠 최대한 그 순간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긴장감보다는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도 왈츠 출 때는 너무 즐거워요. 하지만 첫 공연 날에는 손가락 끝이 떨릴 정도로 긴장이 되더라고요. 하하.
-‘레베카’를 포함해 많은 작품에서 후배 배우들을 이끄는 안무장(캡틴)의 역할도 해내고 있죠. 책임감이 상당할 것 같아요.
맞아요, 책임감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솔선수범해야 하고요, 제가 모르면 알려줄 수 없으니까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있습니다.
-연습 중, 혹은 무대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을까요?
연습 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첫 공연에 왈츠를 출 때 처음으로 떨림과 동시에 희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음악과 조명, 파트너 배우와 모든 게 하나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레베카’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면이나 넘버가 있다면?
2막 1장 ‘영차’ 씬이 좋아요. 뭔가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느낌이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가장 애정 하는 씬은 아무래도 왈츠가 나오는 프롤로그가 아닐까 합니다(웃음).
-‘레베카’ 무대에 또 서게 된다면,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나’(I)의 이전 고용주이자, 소란스럽고 수다스런 미국의 부유층 여성 ‘반호퍼 부인’ 역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뭔가 코믹하면서도 기분 좋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이수현 배우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사건이나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문정 음악감독님이요! 많이 부족한 저를 지금 일하고 있는 EMK뮤지컬컴퍼니에 처음 연결 아닌 연결을 해주신 분이시거든요. 오디션 때 기회를 한 번 더 주셔서 처음으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로 제작사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어요.
-오랜 기간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오르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항상 1년에 한 번은 슬럼프가 오는 거 같아요. 지금도 조금은 슬럼프를 겪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니 앞으로도 잘 이끌어주실 거라고 믿고, 또 기도를 합니다.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데뷔한지 벌써 20년이네요. 20년의 무대 인생을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사실 제 데뷔 연도를 잘 밝히지 않아요. 2001년 ‘스팅’이란 작품으로 데뷔를 했는데, 지금의 제 실력이 너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죠. 20년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면 ‘왜 그것밖에 노력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여기까지 온 것이 분명 저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요즘엔 감사함으로 조금 더 현재를 더 노력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어떤 계기로 뮤지컬 배우가 됐죠?
저는 숭의여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했어요. 당시 교수님이셨던 서병구 안무감독님 덕분에 뮤지컬을 처음 접하게 됐죠. 서병구 감독님은 제 데뷔 작품 ‘스팅’의 안무가이기도 합니다.
-데뷔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부분은?
아무래도 나이겠죠? 하하. 그렇지만 무대에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은 데뷔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결 같습니다.
-그간 해왔던 작품 중에 유독 기억에 남거나, 다시 하고 싶은 작품도 있나요?
언젠가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예전엔 ‘시카고’와 ‘아이다’의 코러스 라인이 가장 기억에 남고 배우로써도 많이 배우면서 성장한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꾸 마음속에 남아요. 초연부터 삼연까지 모두 참여하기도 했지만 뭔가 하면 할수록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어떤 배우로 남길 원하시나요?
‘아, 이건 이수현밖에 못하지’ ‘이수현은 뭔가 다르구나’라고 생각되는 배우가 되길 바랍니다. 무대 위에, 또 어디에 있든지 기억에 남는 배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일단 현재를 잘 즐기며 한 계단 한 계단 잘 올라가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관객들을 비롯해서 동료, 관계자분들에게 모두 인정받고 쓰임 받는 배우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