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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기는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속타는 항공업계


입력 2021.12.17 06:00 수정 2021.12.16 17:27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국내외 경쟁당국 심사 답보 상태...14개국 중 6개국만 승인

공정위 연내 승인 물건너갈 판...업계 “선제적 결정 이뤄져야”

운수권·슬롯 조정 등 조건부 승인시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가 주기돼 있다.(자료사진)ⓒ뉴시스

국내 항공업계 메가딜(Mega Deal)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 인수합병(M&A)이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인수 작업 장기화로 초대형 항공사 탄생에 제동이 걸리면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M&A는 한국을 비롯,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필수 신고국가들에서 여전히 심사가 진행 중이다. 영국·호주·싱가포르 등 임의신고국 3개국에서도 심사가 진행 중으로 총 8개국의 승인이 아직 남아 있다.


지금까지 타이완·터키·태국·베트남(이상 필수 신고국가)·필리핀·말레이시아(이상 임의신고국가) 등에서 승인이 완료된 것을 감안하면 승인 국가 수보다 미승인 국가 수가 더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대한항공은 올 1월부터 국내 심사 주체인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총 14개 국가의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11개월이 지났지만 절반 이상의 국가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이었던 베트남이 지난달 중순 승인 결정을 내린 이후 한달째 감감무소식이다.


양대 항공사 M&A가 늦어지면서 자동으로 합병 후 통합작업(PMI)도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년 통합 절차를 걸쳐 내후년 통합 항공사를 출범하겠다는 목표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당장 대한항공은 국내외에서 기업결합 심사가 지속 지연되면서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 예정 일자를 6월 말에서 12월 말로 미뤄놨는데 다시 내년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을 위한 유상증자는 또 다시 3개월 연기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유상증자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으로 아시아나항공이 1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 대한항공이 이에 참여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인수하면 지분 취득 작업은 마무리되는 구조다.


결국 주요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절차자 지연되면서 지분 취득 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9개월 늦어지게 되는 셈이다. 향후 이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관련 비용 증대로 인해 M&A 효율성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합병 지연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재정 건전성은 악화되고 있다. 올해 3분기 자본잠식률이 11%로 유동성이 저하됐고 부채비율도 3668.34%로 지난해 말 1343.8%과 비교하면 크게 치솟았다. 합병 완료까지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재정이 악화돼 투입돼야 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공정거래위원회

업계에서는 메가 캐리어(Mega Carrier·초대형 항공사) 출범으로 인한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향상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우리 정부 당국인 공정위에서조차 기업 결합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점에 답답해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양 대형 항공사간 합병으로 유럽 등 장거리 및 단거리 노선에서도 독과점이 우려되는 등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수 있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조속한 심사를 통해 연내 마무리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지만 2주밖에 남지 않은 시간 내에 결론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항공업계에서는 국내 경쟁국의 결정이 해외 국가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M&A 기업들의 자국에서도 아직 승인이 내려지지 않았는데 해외 경쟁 당국들이 굳이 서두르려 할까 싶다”며 “공정위 결정이 나와야 다른 국가들의 심사도 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승인 여부와 함께 관련 내용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운수권(다른 나라 공항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 축소와 슬롯(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 조정 등을 바탕으로 한 조건부 승인이 내려질 경우 향후 합병 과정에 미칠 영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정위가 두 대형 항공사간 통합으로 인한 독과점과 경쟁 제한성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터라 조건부 승인이 점점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양사 합병 승인 조건으로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 등 일부 노선의 운수권·슬롯 조정 등을 내세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기업을 넘어 국가 항공산업 경쟁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항공산업이 대표적인 네트워크 산업으로 운수권 및 슬롯이라는 자산의 확보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척도인데 이를 줄이는 것은 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는 게 항공업계의 판단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국내 항공산업의 재도약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익 차원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업계는 강조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30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 M&A 심사와 관련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강력한 희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30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자간담회 영상 캡처.

전문가들은 국내 양대항공사간 M&A 승인이 최대한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정위의 지적대로 경쟁제한성 해소를 위해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면 항공편 운항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항공편 운항 축소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고용 안정성이 하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이 통합 후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항공편 운항이 축소되면 인력의 비효율성이 증대될 수 밖에 없고 인건비 문제가 대두되면서 구조조정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양 대형 항공사의 점유율이 높은 중·장거리 노선의 운수권 및 슬롯을 회수하더라도 이를 수용할 국내 항공사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양 항공사를 제외하면 저비용항공사(LCC)들 밖에 없는데 이들이 보유한 중·단거리용 기재로는 미국과 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 운항이 불가능한다는 것이다.


결국 운수권 및 슬롯 회수의 혜택은 외국 대형 항공사에게로 돌아가면서 국내 항공산업이 과거 해운산업의 몰락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105만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에 달했던 국적선사 선복량은 46만 TEU까지 급감했다. 당시 국내 해운업계는 한진해운 외에도 현대상선이 있었지만 한진해운이 갖고 있던 네트워크는 머스크 같은 외국선사들로 넘어갔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으로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면 국익에 반하는 것으로 과거 해운산업에서의 사태가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며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향상과 위상 제고를 위해 현명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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