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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22-스포츠] ‘세부정책 바란다’ 못 다한 스포츠 윤리 바로 세우기


입력 2022.01.01 09:16 수정 2022.01.01 09:19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체육계 폭력 및 성폭력 논란

심석희, 고 최숙현 사건 이후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

법안 발의 등 제도 마련됐으나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야

‘맞을수록 강해진다’, ‘폭력의 대물림’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 체육계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한 말들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선정 등 꾸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체육계는 내부적으로 선배나 지도자에 의한 선수 (성)폭력 등 인권을 훼손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전 불거진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 증언이다. 이로 인해 스포츠강국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졌던 어두운 자화상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고 급성장한 외면에 어울리지 않는 내면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뒤따랐다.


스포츠 인권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어두웠다. 대한체육회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신고 센터 등이 엄연히 존재했으나 제 기능을 하지 않았고 결국 트라이애슬론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고를 막지 못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스포츠계 윤리 의식도 문제다. 지난해 불거진 여자 배구 쌍둥이 자매(이재영, 이다영)의 학창 시절 학교 폭력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번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남자 배구 대표팀 코치 시절, 박철우에게 폭력을 가했던 이상열 전 KB손보 감독이 자진 사퇴하는 등 아물지 않았던 상처들이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성폭행 가해자로 구속된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 뉴시스

문체부는 2018 평창 올림픽 직후 스포츠 인권침해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로 대두되자 초·중·고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학교 운동부 전체를 대상으로 인권 실태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대한체육회 등록 초·중·고 학생선수 6만3,211명(2019년 5월 기준) 중 최종 5만 7,557명(응답률 91.1%)이 조사에 참여했고 이들 중 15.7%가 언어폭력, 14.7%가 신체폭력, 그리고 3.8%가 성폭력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학생선수들 중 약 34.2%가 운동을 하면서 폭력을 경험한 셈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언어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됐고(19.0%), 중학생(15.0%)과 고등학생(16.1%)의 경우에는 신체폭력 경험이 가장 많았다. 성폭력의 경우에도 평균적으로 3.8%(100명 중 약 4명)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중학생이 4.9%(1,071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이와 같은 폭력 가해자가 주로 지도자, 그중에서도 코치였다는 사실이다(평균 40%). 뿐만 아니라 폭력 장소 역시 체육관이나 운동장이었고, 폭력을 당한 이유는 ‘가해자(주로 지도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서’가 평균 18%로 나타났다. 체육계에 잔존하고 있는 폭력적 위계문화가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다.


학생선수 (성)폭력 실태조자 결과. ⓒ 국가인권위원회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 직후 국가대표 선수의 폭력 및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자 곧바로 대책안 마련에 나섰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고 이후 모든 역량을 집중 시킬 수 있는 스포츠 윤리센터를 출범시켰다.


스포츠 윤리센터는 체육계 비리 및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가해자 처벌 현실화, 피해자의 회복을 돕기 위한 종합적 지원을 하는 곳이다. 그동안 여러 곳에 분리되어 있던 조사 및 신고 기관을 하나로 통합하였으며 체육계 악습의 고리를 끊고 체육의 공정성 확보와 체육인의 인권 보호에 기여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지난 2020년 8월 출범 후 약 1년 5개월이 지났고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스포츠 윤리센터 관계자는 “기관 설립 이후 스포츠윤리 관련 인식조사 등은 아직 실시하지 않아 정확한 영향 파악은 어렵지만 출범 이후 올해 12월(21일 기준)까지 460건의 사건을 접수하여 절반이 넘는 239건에 대해 조사를 완료, 심의위원회를 통해 130건을 의결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추후에도 신고 및 상담과 조사, 교육, 징계이력정보시스템 등 관련 사업을 내실 있게 진행하여 체육의 공정성 확보와 체육인의 인권보호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출범한 스포츠 윤리센터. ⓒ 뉴시스

어려움도 있다. 조사 및 징계권한이 허약하고, 예산 및 인력이 부족하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스포츠 윤리센터에 조사 권한이 명시돼 있으나 강제성이 없어 사건 조사 시 피신고인이 진술이나 조사를 거부하여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를 인지한 국회에서도 체육계 인권침해 및 비리를 감시할 특별사법경찰 제도 도입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며 시급한 법안 통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징계권한도 마찬가지다. 현재 스포츠 윤리센터는 징계요청 권한만 있을 뿐, 직접적인 징계 권한이 없어 조사를 통해 혐의사실을 확인하더라도 징계를 강제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징계는 각 시도체육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있어 ‘체육계에서 독립된 인권감시기구’로서의 역할 수행이 제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산 부족은 스포츠 윤리센터가 출범했을 때부터 대두된 문제점이다. 스포츠 윤리센터 측은 “조사와 상담, 교육, 징계정보이력시스템 발급 등 전체 체육인 대상의 법정과업을 수행하기에도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윤리센터가 권위와 역량을 갖추고 완전 독립된 체육계 인권 및 비리 감시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윤리센터의 운영 및 역할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최숙현법'.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후보들은 각 분야 정책들을 내걸면서 표심 잡기에 한창이다.


이 가운데 체육계 공약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사항 중 하나로 ‘스포츠 윤리 의식 제고’가 손꼽힌다.


현 정부는 지난 2020년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최숙현법'을 제정했다. 지난해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최숙현법은 체육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윤리 교육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사건, 사고가 터진 후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체육인들의 올바른 윤리 의식 함양이 우선되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스포츠의 외형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을 보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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