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 활발했을 땐 산업 내 선순환 가능, 지금은 아냐…이제는 정부 지원 필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억 3000만 명에 육박했던 국내 영화 관람객은 지난해 59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20년 극장 매출액은 2019년 대비 73.3%가 감소한 5104억 원을 기록했다. 관람객 수와 매출액 모두 역대 최저를 기록하며 극장이 ‘위기’를 맞았다.
극장에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여파가 산업 전반에 미쳤다. 개봉작들은 개봉을 연기했으며, 제작에 돌입하거나 앞두고 있던 작품들도 줄줄이 제작 중단 또는 연기를 해야 했다. CGV,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들도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영화관들은 휴관 및 폐관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1일 한국상영관협회와 각 극장사,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수입배급사협회 등 영화인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영화업계 정부 지원 호소 결의 대회’를 개최하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수입배급사협회장 정상진 엣나인 대표는 “영화 산업은 극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고, 극장에서 상영되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중소규모의 영화 제작사이고 배급사”라며 업계 전반에 걸친 피해를 강조했으며, 정윤철 영화감독은 “극장은 기업의 매출을 올리기 위한 영업점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문화 공간이자 지역 상권을 유지 시키는 허브 역할도 한다. 극장이 무너지면 문화도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동네상권도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당장 고사 위기에 놓인 극장 영업시간 제한을 해제해달라는 요구 외에도 코로나19 이후 영화 업계 전반의 피해액 산정 및 손실 보상, 정부 주도의 배급사 대상 개봉 지원 정책 추진, 임차료 및 세금 감면 혜택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들이 성장하고, 이에 영화 산업 내 유통, 투자, 제작 소비 등의 형태도 변화했다. 무너진 영화 산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발을 맞춘 장기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해진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를 위해 한국영화진흥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정책 방향성 변화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업영화들이 흥행몰이를 하며 영화 산업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을 때는 독립, 예술 영화들도 조화롭게 발전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영화 시장이 완전히 망가진 만큼 공적 자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가장 먼저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국내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사용하는 기금으로, 영화관 입장료의 3%를 떼어낸 부과금과 국고 출연금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맞물려 영화발전기금이 고갈 위기에 처했다. 영진위는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의 감소와 사업비 지출로 인한 여유자금 고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재정 지원인 공공자금관리기금 차입금 800억 원의 추가 수입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지만, 극장산업의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원 및 조달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는 “영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재원이 영화발전기금인데, 지금 그게 무너진 상태다. 추후에도 극장은 계속 어려울 텐데, 지금도 기금을 빌려 일시적으로만 위기를 봉합한 상태다. 올 한 해 재원을 국고에서 충당해달라고 여러 차례 성명을 발표하며 읍소했지만, 정부의 의지가 없었다. 상업영화가 활발하게 흥행을 할 때는 산업 내에서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입 축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한류, K-콘텐츠가 뜨며 찬양을 하고 있지만 만드는 사람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을 부족한 것 같다. 이제는 정부가 지원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산업의 탄탄함을 더하기 위해 영화인력에 대한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위기가 닥쳐도 영화 산업의 발전은 이어질 수 있도록 영진위 지원 대상을 작품 중심에서 인력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 조영각 센터장은 “지금은 영진위가 우수 작품을 선정해 예산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면, 인적 자원들에게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돼야 할 것 같다. 당장 작품이 나오지 않아도 영화인으로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획 개발로 이어지게 되는 그런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간의 영화관 상영산업 중심으로 이뤄진 영화 정책의 방향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는 영화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극장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극장용 영화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영화와 OTT 작품의 구분을 없애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도 지금은 영화 위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K-콘텐츠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진위 또한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 2022’를 통해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언급하며 영화·비디오물 법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관객에게 제공된 영상물이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상 ‘비디오물’로 정의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온라인 비디오물 제공업’으로 새롭게 규정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업과 비디오물업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수행 체계, 지원재원 조달, 인력・산업정보 인프라 측면에서 영화산업과 비디오물산업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과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