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11집 '영원한 사랑' 발매
"전작보다 좋은 앨범...작업 만족도 높아"
밴드 자우림의 음악에는 늘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년이 있다. 국적이나 성별, 나이는 중요치 않다. 그저 내면에 갈등과 갈증이 있는 ‘청년’의 이야기다. 자우림이 데뷔하던 1997년의 청년들, 그리고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자우림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우림이 25년차 밴드로서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앨범이 그랬듯 자우림의 이번 정규 11집 ‘영원한 사랑’도 총 12개 트랙이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다. 이 앨범은 당초 지난해 11월에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팬데믹 장기화로 어두운 곡을 내놓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해 1년 늦게 공개됐다. 대신 따뜻한 노래들을 담은 EP ‘홀라!’(HOLA)를 2020년 6월 발표했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무렵 오래된 번아웃으로 공기에서 먼지 맛을 느꼈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아무 것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절망감에 압도되곤 했어요. 작년 11월 공개될 예정이었는데 ‘페이드 어웨이’로 시작해 엮어 나간 어두운 곡들을 현실적인 절망과 불안에 빠져 있는 세상에 내놓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1년을 미루게 됐죠.”(김윤아)
그렇게 새롭게 써진 ‘페이드 어웨이’ 속 단어들은 총 12곡이 실린 이번 앨범의 구석구석으로 번졌다. 두 번째 트랙 ‘영원한 사랑’과 세 번째 트랙 ‘스테이 위드 미’, 열한번 째 트랙 ‘에우리디케’(EURYDICE), 열두번째 트랙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1번 트랙인 ‘페이드 어웨이’로 돌아온다.
“12곡을 내면 그 중에 10곡은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죠. 작은 앨범을 자주 내자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만들다 보니 12곡이 됐네요. 트랙 순서를 정하다 보니 열두 곡이 아니면 안되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해요.”(이선규) “앨범에서 한두 곡 잘 알려지고 나머지는 묻히는 건 우리가 데뷔한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였어요. 2~3곡 든 앨범을 낸다면 그 곡들이 최고라는 확신을 가지고 추릴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런 걸 잘 못 해요(웃음)”(김윤아)
사실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그들의 말을 빌려 ‘고집’을 부려 12곡을 담는 과정은 그들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음악에 늘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의 화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뇌하는 청년이다. ‘페이드 어웨이’의 노랫말 중 ‘라이크 티어스 인 레인’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 ‘배티’가 생을 마감하면서 남기는 말에서 따왔다.
“1집부터 지금까지 저희 음악의 주인공은 늘 청년이에요. 국적이나 성별, 나이는 중요하지 않죠. 다만 청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 내면에 갈등과 갈증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우리 노래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저희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죠. 1997년의 청년이었던 사람과 2021년에 청년인 사람 모두 ‘자우림의 음악은 내 이야기 같아’라고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김윤아)
타이틀곡은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E ME)다. 이 노래를 통해 자우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함에 대한 감정을 노래한다. 아카펠라 후렴구에 이어 리드 기타가 함께 엮어나가는 인트로 파트가 밤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 같은 사운드를 내는 곡(김윤아의 앨범 소개글 中)이다.
“저희 역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만큼 팬데믹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 곡을 쓸 때도 딱히 밝은 곡을 쓰고 싶은 때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한 건 20대 여성분들은 모두 이 노래가 제일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자우림 음악을 기존에 안 들으셨던 분들도 그 노래를 좋아하셨고, 굉장히 믿을 수 있는 분들 즉 자우림 코어 팬층은 ‘페이드 어웨이’가 가장 좋지만 타이틀은 ‘스테이 위드 미’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김윤아)
자우림은 이번 앨범에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자우림에 대해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앨범이라고 말한다. 멤버들은 수록곡을 통으로 묘비명에 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앨범은 ‘이게 자우림이야, 이게 지금 우리야’라고 말하고 있다.
“저희가 공통적으로 가진 음악적 목표가 있어요. 딱 한 가지인데, 새로 앨범이 나올 때는 전작보다 좋아야 한다는 기준이에요. 세 명이 다 충족됐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해요. 앨범 전체를 잇는 이야기의 주제, 주제를 이어가는 방식, 사운드 메이킹 등 처음에 그렸던 청사진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지켜봤을 때 작업적인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물론 송 라이팅도 포함해서요.”(김윤아)
자우림은 은퇴에 대한 질문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새롭게 나오는 앨범이 지난 앨범보다 별로라면 그만둘 때”라고 말해왔다. 이건 어쩌면 그들의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각 앨범 자체의 완성도도 높지만 분명 이번 정규 11집은, 지난 정규 10집에서 조금 더 성장해 있었다. 결국 자우림의 앨범은 ‘완성’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