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촬영에 동원된 말이 죽은 사건으로 논란이 뜨겁다. 고려말 이성계 낙마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넘어뜨린 것이 문제가 됐다. 동물자유연대가 동물학대를 주장하며 20일에 촬영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말이 달리는 가운데 다리에 묶은 줄을 잡아당겨 고꾸라트리는 장면이었다. 말이 쓰러지면서 타고 있던 스턴트맨도 떨어졌다. 사건 이후에 제작진은 스턴트맨의 안위만 살피고 말에 대해선 무신경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드라마 폐지 청원이 제기됐고, 제작진이 고발됐으며 주연배우 부부에게 악플이 쏟아지고 있다.
논란이 비등하자 KBS측에서 입장을 내놨다. 낙마 촬영 며칠 전부터 나름 사고에 대비했고,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어서 그대로 돌려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촬영 1주일 쯤 뒤에 죽었다고 했다.
말이 죽은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의 충격이 원인일 수도 있고, 원래 건강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부검을 통해 밝힐 일인데, 많은 이들은 촬영 당시의 사고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KBS 측도 이 논란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 것을 보면 말이 촬영 때문에 죽었을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 ‘KBS는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런 입장에 대해서, 촬영 사고 당시 말이 스스로 일어나 걸었다는 해명과 며칠 전부터 사고에 대비했다는 해명이 사실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제작진이 말의 안위에 대해 무신경했다가 논란이 터지니까 변명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하지만 이 해명이 사실이라는 증언이 나오기도 해서 상황은 불분명하다.
동물자유연대는 "현행 동물보호법은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 금지 처벌하고 있다. 또 이같은 장면을 담은 영상을 촬영, 게시하는 것도 동물학대로서 범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이번 ‘태종 이방원’ 촬영은 설사 말이 그 사고로 죽지 않았더라도, 부상을 입은 것만으로도 법적으로 문제 될 소지가 있다.
이번 일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닌 이유는 말을 쓰러뜨리는 촬영이 그동안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말이 달리다가 고꾸라지는 장면도 많이 나왔었다. 과거 ‘정도전’ 때도 이번처럼 말의 다리에 줄을 묶어 고꾸라지게 만들었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가 “촬영 중 말이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태종 이방원’ 제작진도 별 생각없이 관행처럼 낙마장면을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점을 간과했다. 과거 사극에서 말이 부자연스럽게 넘어지는 장면이 나오거나 심지어 말 다리에 묶은 줄이 그대로 노출된 적이 있어도 별 논란이 없었지만, 2022년의 시청자들은 달랐다. 그 사이 인권감수성이 달라졌고 그런 인식이 생명 전체로 확산됐다. 특히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물의 안위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도 높아졌다. 이젠 어느 연예인이 반려동물을 파양했다는 의혹도 논란이 되는 시대다. 과거엔 동물을 재산의 일종 정도로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명으로 바라본다. 생명을 대하는 시각 자체도 변했다.
이렇게 세상이 달라졌는데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별 생각 없이 촬영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말이 죽었기 때문에 말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지만, 말이 넘어지면서 땅에 떨어진 스턴트맨에게도 위험한 순간이었다. 한국 영상업계는 그동안 관련자들을 ‘갈아 넣으며’ 제작을 이어왔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런 속에서 좋은 그림을 만들 수만 있다면 사람이 당할 위험에 무신경했고, 동물에겐 더 무신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사와 제작진이 세상이 달라졌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태종 이방원’은 달라진 세상을 모르고 구왕조에 매달리던 사람들이 몰락하는 내용인데, 정작 제작진이 세상 변화에 둔감했다. 이런 생명경시 촬영이 이어진다면 제작진과 방송사가 몰락하게 될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