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메이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있다. 특히 정치 분야와 연관된 정의에 대해서는 서구 철학의 양대 산맥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후 최근까지 많은 논란이 이어져 왔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게 옳은 것일까, 아니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가. 최근 개봉한 변성현 감독의 정치 영화 ‘킹메이커’에서는 이러한 정의에 대한 논쟁을 발견할 수 있다.
‘킹메이커’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분)과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분)의 이야기다. 김운범은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정치인이지만 매번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낙선한다. 어느 날 김운범에게 서창대가 다가오고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으로 김운범을 대통령 후보까지 올려놓는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모두가 총력을 기울이던 중 김운범의 자택에서 폭발물이 터지고,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영화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1960~70년대에 제대로 된 민주 선거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금권선거가 판을 치던 시대 선거 유세를 한다며 정치인은 집집마다 돌며 막걸리, 와이셔츠, 고무신 심지어 현금까지 건넸다. 늘 낙선을 하면서도 승리의 길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믿는 김운범과 승리하지 않으면 정의는 존재할 수 없다 주장하는 서창대. 감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인용하며 정당한 목적을 위해 과정과 수단까지 정당해야 하는지, 아니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정치는 쇼비즈니스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영리하고 치밀한 전략가 서창대는 정치적 열세에 놓인 김운범에게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였다. 서창대는 이성보다 감성을 주무르며 선거에 유리한 전략을 내세우는가 하면 선거에 유리한 판세를 만들 수 있는 ‘쇼’를 제안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을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거 공약보다는 국민을 분열시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정치인의 행동을 꼬집는다. 영화는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방법, 분위기를 주도하는 방법, 상대 후보에게 타격을 주는 방법과 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물밑에서 전략을 짜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치가 쇼비즈니스와 같다는 것을 되새긴다.
변성현 감독만의 감각적인 볼거리도 제공한다. ‘킹메이커’가 기존의 정치 드라마와 차별점을 갖는 것은 변 감독만의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가미됐기 때문이다. 선거판의 비화를 현실과 절묘하게 버무려 시대가 묻어나는 정치드라마를 완성해 냈다.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정치인 김운범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대조적인 특징을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미장센으로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3월 9일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정치환경은 변한 게 없다. 영화에서와 같이 여전히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선거보다는 당선을 위한 쇼비즈니스와 네거티브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선거의 계절에 개봉한 정치영화 ‘킹메이커’는 정치에서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