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씽로튼' 4월 1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2019년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의 앙상블로 데뷔한 배우 이성빈은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연기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짐에 늘 감사하고, 쓰임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한다.
지난 2020년 방송된 앙상블 오디션 프로그램 tvN ‘더블 캐스팅’에 출연한 것도 새로운 무대를 향한 도전이었다. 아쉽게 본선무대에서 탈락했지만 좌절은 없었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큰 수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거쳐 온 ‘브로드웨이 42번가’(2020) ‘광화문연가’(2021) 그리고 현재 출연 중인 ‘썸씽로튼’까지. 이 무대 경험들은 그를 한 뼘 더 ‘좋은’ 배우로 성장시킨다.
-원래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건가요?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밴드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꾸준히 음악공부를 했고요. 그러다 20살 때 우연히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뮤지컬 플래시몹에 참여했는데 그때 뮤지컬의 매력을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데뷔작은 ‘아이언 마스크’(2019)죠. 데뷔 당시의 무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겠고 안무 진도가 느린 편이라 솔직히 많은 장면에 나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한 장면이라도 조금 더 오래 무대에 머물며 연기하고 싶어 쉬는 날에도 연습실에 나갔던 기억이 나네요.
-올해는 ‘썸씽로튼’에 함께 하게 됐어요.
‘썸씽로튼’의 한국 초연을 보고 ‘와! 이거다’ 싶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뮤지컬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기도 했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행복한 에너지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공개 오디션 공지를 보고 ‘아싸!’하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하.
-연습 과정, 공연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얼마 전 공연 때 일인데 2막 오프닝에서 셰익스피어의 보디가드로 등장해 박현우 배우와 행거를 돌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빠른 속도로 돌리다가 행거를 놓치고, 또 그걸 잡으려고 엄청 뛰어다닌 기억이 나네요. 원래 행거를 돌리고 다시 잡은 후 멋지게 서있어야 되는데 이미 멋짐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서…. 웃기면서도 부끄럽고 그날 공연을 본 관객분들에게 죄송하단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함께 하는 배우들과의 호흡도 정말 중요한 작품인 것 같아요.
맞아요, 다행히 ‘썸씽로튼’ 팀 모두가 따뜻하고 센스가 있어요. 수백수천 개의 약속들로 이루어진 공연이잖아요. 혹여 작은 실수가 있어도 서로가 케어해주는 부분도 많고, 선배들은 공연 외적으로도 후배들을 많이 챙겨주시려고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또 저희는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작품엔 앙상블로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세부적으로 어떤 역할들을 맡고 계신지 궁금해요.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시민’, 바텀 형제의 ‘극단원’, 또 ‘미래의 뮤지컬 배우’ ‘셰익스피어의 보디가드’ ‘작가’ 그리고 ‘과일 사는 사람’으로도 나옵니다.
-이성빈 배우는 작품 속에서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나요?
정말 많은 뮤지컬 작품 중에서도 ‘썸씽로튼’은 흔치 않게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시대에 비추어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도 눈에 띄고요. 지금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매일 같이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고 흑사병과 같은 바이러스도 돌고 있잖아요. 이런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게 주어진 역할과 장면을 잘 소화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삶이 너무 힘들고 때론 아픔을 주더라도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고요.
-작품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뮤지컬들을 찾는 재미도 있잖아요. ‘썸씽로튼’에 등장하는 다양한 작품들 중 가장 애정이 가는 넘버가 있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모르실 것 같은데 넘버 ‘어 뮤지컬’(A Musical)에 뮤지컬 ‘광화문연가’ 중 ‘붉은 노을’의 멜로디가 삽입 돼 있어요.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이라서 그런지 추억이 돋아나서 더 애정하는 부분입니다.
-이밖에 ‘썸씽로튼’의 장면들 중 더 언급하고 싶으신 장면이 있다면?
요즘 닉 바텀와 셰익스피어가 탭 배틀을 하는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닉을 열렬히 응원하는 재미에 빠져있답니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우유빛깔 닉 바텀, 사랑해요 닉바텀’ 등 애드립을 선보이고 있어요. 앞으로 더 재미있게 연기할 생각입니다(웃음).
-작품이 화려한 만큼, 배우들이 체력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많을 것 같은데요.
사실 배우들 모두 운동도 많이 하고 관리에 힘쓰고 있어서 체력적으로는 괜찮아요. 오히려 정말 힘든 건 의상 퀵 체인지를 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다시 무대로 가야 할 때예요. 너무 건조해서 입술이 달라붙기도 해서 대사가 없을 때는 몰래 입술에 침을 바른답니다. 하하.
-작품을 보러 올 예비 관객들에게 한마디.
아직도 안 보신 분이 계신가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우릴 가마니로 볼테니까’(극중 대사) 하하하! 내 배꼽이야!
-이성빈 배우가 가지고 있는 무대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나에게 진실하라’…. 막이 올라가기 전 루틴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있어요. 늘 스스로 나는 무엇인지 되새기는 일인데요. 지금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나는 르네상스시대 사람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보다, 보여줄 모습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예요. 눈이 깊은 만큼 감정 표현에도 자신 있습니다. 잘 익어서 맛있는 연기 많이 보여드릴게요!
-앞서 앙상블 오디션 프로그램인 tvN ‘더블캐스팅’에도 출연하셨죠.
‘더블캐스팅’은 예선부터 치열했던 오디션이었어요. 가끔 친구들이 제가 본선 때 불렀던 노래를 ‘아주 즐겁다는 듯이’ 부르며 놀릴 때가 있는데요. 저는 제 분석과 연기가 아쉽지는 않아 괜찮아요. 다만 오디션 당시 제가 생각했던 연출과 표현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출연 당시 심사위원들이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도 있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은 없지만 문득 떠오르는 건 차지연 선배님께서 제게 ‘X’를 주셨어요. 캐스팅하지 않겠다는 의미죠. 이후 뮤지컬 ‘광화문연가’에 참여하면서 차지연 선배님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는데 차마 말씀은 못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
-또 한 번 ‘더블캐스팅’과 같은 기회가 온다면, 출연할 생각이 있나요?
조금 더 실력을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해야 후회가 없다는 걸 배웠어요. 배우로서 저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면 망설임 없이 출연할 생각입니다.
-뮤지컬 배우로서, 이성빈 배우의 방향성도 궁금합니다.
조금 느리고 돌아갈지언정 어떤 무대라도 주어진다면 매 순간 행복하게 연기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뮤지컬 작품, 혹은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언젠가 한 번은 EG뮤지컬 컴퍼니의 ‘유앤잇’에서 ‘규진’ 역을 해보고 싶어요. 참고로 ‘규진’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AI 로봇으로 되살려 살아가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공연도 많이 보고 오디션도 봤었는데 캐스팅되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참 따뜻하고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았어요.
공연을 처음 봤을 당시 소중한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배우는 사랑을 먹고 경험을 딛고 자라요. 때문에 따뜻하고 소중한 감정을 잘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도 들려주세요.
무대와 스크린을 휘젓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