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까지 대학로티오엠 1관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프로이트 역 출연
90분 열연에 기립박수 이어져
무신론자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유신론자인 영문학자 C.S. 루이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석학이 90여분에 걸쳐 벌이는 설전은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치열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거나 어둡지도 않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1856∼1939)와 루이스(1898∼1963)의 대담을 그린 2인극으로, 미국 극작가 마크 저메인이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극은 프로이트의 초대로 그의 서재를 찾은 루이스의 등장부터 시작된다. 현실에서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즉 극중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정신분석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분야의 두 사람이 나누는 논쟁은 심오하면서 위트가 넘친다.
두 학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 논하다 종교,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 사랑, 양심, 유머 등으로 확장되는 대화를 이어가며 양보 없는 토론을 벌인다. 어려운 주제 탓에 마냥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야기가 고루하다는 편견을 누그러 뜨려준다.
극이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곳곳에 녹아든 위트 덕이다. 평소 ‘유머’를 즐겼던 루이스와 ‘농담’에 대한 연구를 남긴 프로이트의 위트가 팽팽한 긴장감의 완급을 조절하고, 지적인 두 사람이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유치한 말장난도 웃음 포인트다.
배우들이 펼치는 열띤 연기를 보는 재미도 크다. 특히 83살의 프로이트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 정신분석의 창시자로 신을 믿지 않는 그의 신념을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종교 의식도 행하지 않았다. 이는 “나의 종교는 연극”이라며 79세 조배우 오영수가, 골든 글로브의 새 역사를 쓴 이후에도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보다 현재 서 있는 무대에 오롯이 집중하는 모습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오영수는 딱딱하고 위엄 있는 학자의 모습 보단, 오히려 부드럽고 유머러스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프로이트를 만들어 냈다. 말끝을 길게 빼는 특유의 말투는 ‘오징어 게임’에서의 ‘일남’이 연상되기도 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긴다. 오영수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이상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그 역시 반듯한 외모에서 풍기는 지적 이미지를 가진 동시에 인간적이고 어리바리한 모습을 겸비해 웃음을 자아낸다.
‘라스트세션’에서는 오영수와 함께 신구가 ‘프로이트’를 나눠 연기하고, ‘루이스’ 역엔 이상윤과 전박찬이 번갈아 연기한다. 3월 6일까지 대학로티오엠(TOM)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