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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사태 장기화에 속 타는 현대차…러 사업 '사면초가'


입력 2022.03.09 06:00 수정 2022.03.09 07:14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러 공장 가동중단 길어질 듯…경제 붕괴 위기로 판매도 위축

달러결제 중단, 비우호 국가 지정으로 현지 딜러와 거래 차질

유가 급등‧인플레이션으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 위축 우려

국제여론‧러시아여론도 살펴야…우크라 구호금 내고도 '쉬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모습 ⓒ AP=뉴시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에서 생산‧판매 체제를 갖춘 현대자동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격화되면서 서방의 대러 제재가 강화되고, 유가와 환율이 요동치며, 국제 여론도 더욱 악화되는 등 전반적인 상황이 러시아 현지 생산‧판매는 물론, 글로벌 판매와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부품 수급난으로 멈춘 러시아 공장, 물류난으로 재가동 '요원'


9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차 공장은 지난 1일부터 멈춰선 이후 재가동 시점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당초 반도체 수급 차질로 지난 1~5일 공장 가동을 멈추고 러시아 연휴인 6~8일이 지난 후 9일부터 재가동될 예정이었으나, 이날까지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품 공급 차질이 심화돼 현재로서는 언제 재가동이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가동 중단과 우크라이나 사태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부인했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전경. ⓒ현대자동차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러시아 발착 물류대란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 러시아공장도 자유롭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주요 선사들이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하고 잇달아 러시아 기항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현대차 러시아공장도 한국을 비롯한 외부로부터의 부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될수록 현대차 러시아 공장의 가동중단 시기도 길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러 경제붕괴 위기감,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판매도 힘들어


설령 생산이 정상화된다 해도 현지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긴 힘든 상황이다. 서방의 제재 강화로 러시아 경제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러시아 내 소비심리가 악화된 데다,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현지 소비자 구매력까지 약화되면서 고가의 내구재인 자동차 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러시아 현지 자동차 내수판매 규모가 29%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이는 침공 초기 내놓은 예상치로, 상황이 격화되고 장기화되면서 감소폭은 더 클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러시아권역 판매목표를 전년 대비 5.8% 45만5000대로 상향 조정했으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달러결제 막혀 현지 딜러와 거래 차질…비우호 국가 지정도 악재


생산과 수요가 뒷받침되더라도 정상적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러시아 현지 딜러들에게 자동차를 판매하며 달러화로 대금을 지급받고 있으나, 대러 금융제재로 달러화 결제가 막혔다. 그렇다고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루블화 결제로 대체했다가는 막대한 환차손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심지어 현지 딜러들과의 이전 거래물량에 대한 대금까지 악성 채권이 될 우려가 있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한 비우호 국가 명단에 한국을 포함시킨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린 ‘일부 외국 채권자에 대한 한시적 의무 이행 절차에 관한 대통령령’은 비우호 국가 목록에 포함된 외국 채권자에 대해 러시아 정부와 기업, 지방정부, 개인 등이 외화 채무를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현지 딜러들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달러 채권을 루블화로 상환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유가 180달러 전망…내연기관차 수요에 치명타


우크라이나 사태가 앞으로 수 개월간 지속될 경우 러시아 외 지역에서도 실적에 타격을 받을 우려가 크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글로벌 경기악화가 전세계 자동차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선을 돌파했고, 러시아 석유거래 위축 가능성으로 인해 앞으로 18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현대차‧기아는 지난해부터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주력 판매제품은 내연기관차다. 가솔린‧디젤차 수요는 유가가 오를수록 위축된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수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 역시 해외 주요 시장의 경기 악화로 구매력이 떨어지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도  난처…우크라 구호금 100만달러 기부 '비공개'


러시아를 향한 국제 여론 악화와 서방 경제제재에 대한 러시아 내 반발 분위기도 현대차에게는 양면에서 부담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에서의 민간인 피해 확대에 더해 원전 점령 과정에서의 위험성 등이 부각되며 국제여론은 각국 정부나 동맹 차원에서의 제재와는 별개로 글로벌 기업들에게까지 러시아와의 거래를 끊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지에 공장까지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사업을 중단했다가는 손해가 막심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간 동안에 한해 사업 중단을 선언하는 것도 곤란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마무리되고 사업을 재개하는 시점에서 러시아 소비자들의 인식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이미지 뿐 아니라 러시아 시장 내에서의 이미지까지 챙겨야 하는 현대차로서는 중간에 낀 난처한 입장이 돼 버렸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전경.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현대차그룹은 최근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지원을 위해 적십자사에 100만달러(약 12억원)을 기부하기로 했으나,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고 있다.


통상 인도주의적 기부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관행을 깨고 ‘조용히’ 기부를 결정한 것도 국제 여론과 러시아 내 여론을 모두 감안한 고심의 결과물로 풀이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대차로서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사태가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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