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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휘발유값, 정유사 배만 불린다고? [조인영의 적바림]


입력 2022.03.11 07:00 수정 2022.03.11 07:49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역대급 1분기 실적 앞두고 정유업계 '착잡'…수요 보다 공급불안 '효과'

올라도 너무 오른 유가에 소비 떨어질까 우려…각종 규제·세폭탄은 '덤'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차량들이 주유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노래 가사가 저절로 떠오를 만큼 정유사들의 요새 마음은 착잡하다. 역대급 1분기 실적을 앞두고 어느 때 보다 따가운 여론의 뭇매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등에 대한 증권가 컨센서스(추정치)는 모두 작년을 상회한다. 비상장사인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도 이와 비슷한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면서 정유사들의 정유 사업 매출도 그만큼 늘어날 전망이다. 휘발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통상 2~3주 시차를 두고 국제 시세를 따라간다.


이는 다르게 보면, 원유값 강세가 지속되는 한 휘발유값은 현재 ℓ당 2000원에서 3000원도 돌파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원가가 상승하면 최종 제품 가격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상승세가 워낙 빠르고 가파르다보니 체감 효과는 더 크게 느껴진다.


서민 물가와 직결되는 휘발유, 경유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팍팍 오르는 데, 이들에게 기름을 직·간접적으로 판매하는 정유사들은 매출이 오르니 소비자들의 원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지난 2월까지, 정유사들이 작년 총 7조원이 넘는 역대급 영업이익을 달성하면서 많게는 1400%가량의 성과급을 받자 여론의 눈초리는 더욱 따가워졌다.


직원들은 경영 실적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성과급을 받은 것이라지만, 고물가로 허덕이는 국민들에게는 '나홀로 실적 잔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정유사들도 그러나, 할 말이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올 1분기 역대급 실적은 순수한 수요가 밀어올린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위기가 끌어올린 '착시 효과'에 가깝다.


실적 호조의 요인은 석유제품 수요 개선도 있지만 무엇 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 등 지정학적 이슈로 인한 재고자산 평가이익(원유 구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 차이를 통해 갖는 이익)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 크다.


정유사는 원유를 매입한 후 정제 과정을 거쳐 통상 2~3개월 후에 판매하기 때문에 유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면 상대적으로 싸게 산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올라 이익을 본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70달러 중반대였던 원유 가격이 한 때 130달러를 돌파하는 등 말그대로 '고공행진'하면서 이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고평가이익은 회계장부상 결과일 뿐, 실제 현금 흐름과는 무관하다.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가 되는 정제마진은 지정학적 위기가 겹치면서 4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의 비용을 뺀 가격으로, 아직은 손익분기점(BEP)을 넘어서고 있지만 현재로선 강세를 예단하기 힘들다.


오히려 올라도 너무 오른 유가에 이제는 소비 위축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갈등에 많게는 200달러까지도 유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정유들은 코로나 이후 어렵게 만회한 적자를 또 볼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악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적은 실적대로 타격을 받고, 규제는 규제대로 강화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기름값 안정화 정책으로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냈을 때 정유업계는 정책 시행 당일부터 인하분을 반영하면서 손실분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기존 제품 재고를 소진하고 새로 유통되는 기간을 감안하면 약 2주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강제와 다름없는 협조 요청에 '울며 겨자먹기'한 것이다. 그래도 기름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이번에는 유류세 인하폭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인하폭이 현 20%에서 최대 30%까지 확대된다면 정유사들은 또 무언의 압력으로 인하 조치 시행 당일부터 확대된 인하율을 적용할 상황에 내몰릴 형편이다.


문제는 각종 규제와 세폭탄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가 '탄소중립 시대'를 선언한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방안으로 '탄소세'라는 새로운 세폭탄이 올해 예고된 상황이다. 이미 각종 환경 보전 명목으로 각종 세금을 떠안고 있는 정유사들은 여기저기서 내미는 청구서에 한숨이 늘고 있다.


올해 실적 변동성이 커진 정유사들은 각종 규제와 세부담으로 녹록치 않은 환경을 보낼 공산이 높아졌다. 코로나 이전 수준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예측하기 힘든 대내외 위기는 이런 기대를 충분히 무산시킬 가능성이 있다.


기름값 상승이라는 단면만 보고 정유업계가 배만 불리고 있단는 판단은 그래서 과도하다. 쏟아지는 각종 정책에도 묵묵히 손실을 부담하며 기간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오고 있는 정유사들에게 좀 더 객관적이고도 유연한 시각이 요구된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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