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 등 기업과 협업, 홍보는 성공
스마트폰 활용한 숏폼 콘텐츠 늘어, 영화는 인식·보급면에서 '아직'
스마트폰으로 우리가 일반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은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 13 프로(PRO)로 단편 영화 '일장춘몽'으로 이 질문에 답했다. 애플과 박찬욱 감독의 이번 협업은 애플이 세계 각국 영화감독들과 함께 단편 영화를 만드는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시 한번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의 놀라움을 안겼다.
'일장춘몽'은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이 출연해, 상업 영화 못지않은 캐스팅을 자랑했으며 20분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 공포, 사극, 무협 액션, 멜로, 마당극까지 다양한 장르가 담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의 특수한 보조 장비 없이 오로지 아이폰으로만 촬영됐다. 스마트폰 영화라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고 화면 전환도 자연스럽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여준 고무적인 성과다.
해외에서는 장편영화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션 베이커 감독은 '텐저린'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국내에서도 꽤 오래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촬영해왔다. 2010년 '말아톤', '대립군'의 정윤철 감독이 학생들과 단편 영화를 만들어 공개했으며 박찬욱 감독 역시 2011년 KT올레와 협업해 '파란만장'을 제작하며, 스마트폰 영화 촬영에 도전했었다. '파란만장'은 한 남자의 낚싯대에 묘령의 여자가 건져 올라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30분 분량의 판타지 영화로 이정현과 오광록이 출연했다. 100% 아이폰으로만 촬영됐으며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단편경쟁 부문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 초대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파란만장’과 ‘일장춘몽’의 차이점에 대해 네이버 무비 토크에서 “‘파란만장’을 아이폰 4로 찍었을 때 큰 화면으로 봤을 때 노이즈가 생겼다. 이 노이즈를 스마트폰 영화만의 특색으로 가져갔고 이번에는 큰 스크린에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선명한 영상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되도록 큰 화면으로 봐달라”라고 전했다.
신예 이충현 감독은 2020년 삼성과 함께 이성경 주연의 단편 영화 '하트어택'을 만들어 왓챠에서 선보였다. '하트어택'은 삼성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20 울트라(Ultra)로 본편은 물론 예고편, 메이킹필름, 촬영 팁 소개, 포스터까지 촬영했다. 이충현 감독은 무거운 영화용 카메라가 아닌 휴대전화를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장면들을 강조해 기능을 극대화하는 연출들을 시도했다. 예로 스마트폰을 농구공에 휘감아 공중에 날리는 시도를 하는 등 소품들에 스마트폰을 부착하며 현장감을 살렸다.
'달콤한 도시', '놈놈놈', '밀정' 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지난해 삼성전자의 삼성 갤럭시 S20과 갤럭시 노트 20으로 영화 '언택트'를 촬영했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과 각본, 배우 김고은, 김주헌이 주연으로 출연한 단편 영화다. 도예 공방을 운영하며 브이로그를 즐기는 수진(김고은 분)과 해외 유학을 떠난 뒤 3년 만에 귀국한 성현(김주헌 분)의 비대면 연애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계 이름 있는 감독들과 애플, 삼성의 컬래버레이션은 스마트폰 영화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효과가 대중들에게까지 미쳤느냐를 질문한다면 그건 '글쎄'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화 촬영’이라는 인식을 줬지만, 이 같은 이벤트 외에 상업 영화나, 인상에 깊게 남길 만한 결과물은 떠올리기 힘들다. 홍보의 기능은 했지만 실제로 도전의 보급은 물음표인 셈이다.
한 영화학도는 "영화감독들의 도전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고무적인 성장을 말할 순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을 뿐이지, 환경은 기존 영화와 같았다. 그런 결과물을 가지고 '여러분도 도전하고 즐기세요'라고 대중에게 말하는 건 와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의 2011년 작품 '파란만장'의 제작비는 1억 5000만 원이었으며 특수 효과 분장 등은 기존 영화 수준으로 80여 명의 스태프가 투입됐다.
김지운 감독과 삼성전자의 협업도 8K 생태계를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경험시키는 것이 기획의도지만, 이것 역시 '김지운 감독이라 가능한 작업물 아니겠는가'라는 반문이 있었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정보 검색, 영화 감상, 음악 듣기 등 다양한 업무가 클릭 하나로 가능해졌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 영상의 기능도 플랫폼 확대와 함께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브이로그, ASMR, 먹방, 리뷰, 틱톡 영상 등 스마트폰을 활용한 숏폼 콘텐츠는 늘어나고 있지만, 스마트폰 영화는 아직 주류라 이야기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이영음 감독은 "스마트폰이라는 작고 편리한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세상의 낮고 소소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오히려 소구점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마케팅 측면에서 유명 감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데미안 셔젤이나 박찬욱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은 걸 '스마트폰 영화'라고 말하기보단, 셔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