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부 연안에 짓는 원전 안전관리 '물음표'
벨라루스, 체르노빌서 방사능 낙진 70% 날아와
WENRA 본받아 동북아 원자력안전협의체 결성해야
중국 동부 연안에 짓는 원전 100기 안전관리엔 '물음표'
중국의 원전굴기(原電崛起) 기세가 무섭다. 원전 대국을 꿈꾸며 2050년까지 400기 이상 원전을 가동할 계획이다. 경제발전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와 대기오염 심각성을 해소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원전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 동부 연안지역 스다오완, 하이양, 톈완, 친산, 팡자산, 싼먼, 닝더, 푸칭 등 중국 동부 연안에 100기 원전이 밀집돼 지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 원자력 안전관리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기술이 진보하는 속도를 안전관리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지난해 2월 홍콩 서쪽 130㎞ 부근에 위치한 타이산(台山) 원자력발전소 사고였다. 당시 중국 당국은 이 사고를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0등급(정상운전의 일부로 간주하는 경미한 고장)으로 분류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 원전장비업체 프라마톰이 미국 에너지부에 보낸 문건을 미국 방송사 CNN이 입수해 보도하면서 파문이 커졌다.
CNN은 타이산 원자로에서 핵분열 시 방출되는 방사능 기체인 '핵분열생성 가스'가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 당국이 원전 폐기를 막기 위해 방사선 수치 허용량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전력공사(EDF) 대변인은 "유출 가스는 방사성 물질인 크세논과 크립톤"이라고 폭로했다. 중국 정부의 원전 안전 체계에 전세계의 불신이 생긴 사례였다.
중국 원전 사고 발생 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은 학계에서도 엇갈린다. 먼저 중국 동부 연안 원전은 방사능이 누출되면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동남부 연안 원전의 경우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물이 대만해협에서 대한해협으로 이어지는 대마난류를 통해 한반도로 유입될 수 있다는 '위험론'이 제기된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에게 제출한 '중국 원전 가상사고 시 국내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장쑤성 롄윈강에 있는 톈완 원전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방사성 물질이 사흘 만에 한반도에 도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장쑤성과 서울과의 거리는 약 970㎞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 우리나라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방사능이 편서풍을 타더라도 우리나라에 도달했을 때 피해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다는 의견도 있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방사능이 바다건너 200km가 지나면 미미하고 400km 지나면 방사능 낙진이 거의 없어질 것으로 분석된다"며 "환경과 건강에 미칠 피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체르노빌에서 방사능 낙진 70% 날아온 '벨라루스'의 교훈
원전 보유국 방사능 유출이 접경 국가에 피해를 입힌 사례는 존재했다. 1986년 4월 26일 현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 북쪽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했다. 원자로 설계적 결함과 안전 규정 위반, 운전 미숙 등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고 등급인 7단계에 해당하는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평가됐다.
당시 체르노빌 원전 방사능 낙진 70%가 바람을 타고 북측 국경을 맞대고 있던 벨로루시(현 벨라루스)에 집중됐다. 그 결과 벨라루스 전 국토의 22%가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방사능에 따른 벨라루스 경제적 피해는 약 2350억 달러다. 이는 1997년 당시 벨라루스의 국내총생산 10배 이상 수치로 분석됐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 등 당시 옛 소련 지역 14만5000㎢ 이상에 방사성 낙진이 대량으로 공기 중에 흩날렸다.
체르노빌 사고는 소련 정부의 미흡한 원자력 안전 관리 의식과 안일한 후속 대처를 보여준 사례였다. 당시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정전시 비상전력 공급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다. 하지만 작업자 조작미숙으로 인해 원자로 내 출력 급강하가 발생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원인은 인재(人災)였다는 것이 원자력계 분석이다.
벨로루시 피해는 원자력 안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해당국뿐만 아니라 인접국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교훈을 전세계에 줬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정부 역시 자국 원자력 안전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주변국 원자력 안전관리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유럽, 체르노빌 아픔 딛고 안전 협력…동북아도 원자력안전협의체 결성해야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원전 사고로 기억됐음에도 주변국들이 후속 대응을 잘한 사례로 꼽힌다. 유럽은 체르노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서유럽원자력안전규제협의체(WENRA)를 출범시켰다.
WENRA 핵심은 가입 국가들끼리 원자력 안전 기준을 합의한 뒤 각국 원전 운영을 서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빛을 발했고 역내 300기에 달하는 원전(운전+정지)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지역안전협력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포함시킨 최종안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기반이 뒷받침됐다는 분석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지역도 WENRA를 모델 삼아 원자력 안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특히 일본의 경우 세계 3대 원전 사고로 분류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 당사국임에도 원자력 안전에 대한 주변국과 논의와 협력에 나서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체르노빌 이후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 등 원전 안전 논의에 적극 참여했던 것과 비교된다.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이 놓친 역내 원자력 안전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특히 역사를 거듭하며 한-중-일 3국 관계가 상당히 미묘한 데다 동북아에서 핵 확산 위험이 가장 높은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윤 정부는 원자력 안전 논의 주도권을 가져가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에 방문해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되는지 볼 수 있고 일본, 중국도 우리나라에 와서 점검하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 간에 원전 안전성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원자력 규제 수준도 각국마다 다른데 협력체제를 만들면 조화로우면서 철저하게 안전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황일순 유니스트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는 "동북아시아원자력안전규제협의체(Northeast Asia Nuclear Regulators Association)를 결성하기 이전에 먼저 한미 원자력 안전공동체 결성이 필요하다"며 "원자력 안전관리 수준을 미국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동북아 지역에서 원자력 안전 협의체를 결성하기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먼저 원전 안전 신뢰 최강국이 되고 축적된 노하우를 로드맵화하면 일본과 중국도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원전최강국 청사진⑤]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