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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에겐 ‘잊힌 삶’ 누릴 권리가 없다


입력 2022.04.11 08:00 수정 2022.04.11 08:01        데스크 (desk@dailian.co.kr)

“하루도 더 여기 있고 싶지 않다”

국가위신·국민자존 흔들어놓고

미국조차 겪는 대통령제의 위기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단다. 지난달 30일 조계종 제15대 종정 추대 법회 참석에 앞서 불교계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미 지난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유사한 언급을 했었다.


“대통령 끝나고 나면 그냥 잊힌 사람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 대통령 이후에 무슨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무슨 현실 정치하고 계속 연관을 가진다든지 그런 것을 일절 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끝나고 난 이후의 좋지 않은 모습 이런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루도 더 여기 있고 싶지 않다”

‘좋지 않은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자들이 그 말을 듣고 웃은 것으로 미루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짐작이 맞으리라는 확신은 물론 없다.


아마도 대통령직에 대해 특별한 매력을 못 느꼈던 듯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7일 MBN 뉴스와이드에 나가 전한 말의 뉘앙스가 그렇다.


“정말 하루를 더 여기서 있고 싶은 대통령이 누가 있을까요?”

문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했다. 5월 9일 자정에 청와대를 떠나느냐, 10일 아침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장으로 바로 가느냐는 언론들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었던 셈이다. 대통령직의 어려움이 그 한 마디에서도 또렷이 묻어난다. 위로라도 해 주고 싶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잊히고 싶다’는 희망까지는 이해해 줄 수가 없다. 천만에!


“이제 손을 털고 나가니까 오늘부터 나를 잊어 달라.”

도대체 이런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주문을 어떻게 할 수가 있는가. 5년 동안이나 국정책임자라는 명분과 근거로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무한이다. 역사를 통해 두고두고 질문을, 그리고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된다. 물론 생존해 있는 동안엔 직접 그 책임추궁에 응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직이다. 자유로운 삶이야 국민 누구에게나 부여된 헌법적 권리다. 문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문제와 관련될 때는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권력이 1인에 집중된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그 자리를 누린 대가라 할 수 있다. 그게 대통령의 숙명이다. 혼자 행사했으니 혼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권력분립의 체제에서 행정부의 수장이었을 뿐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 생각은 않는 게 좋다. 자신이 집권해 있는 동안 대통령 권력을 어떻게 행사했는지 돌아보면 “책임을 나누자”는 말은 꿈에서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문 대통령도 곧 청와대를 떠난다니 무엇보다 뚜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20017년 5월 15일 청와대 관저에서 첫 출근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다. 주영훈 당시 경호실장, 송인배 전 선대위 일정총괄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김정숙 여사가 관저 정문인 인수문 밖까지 동행했다. 핑크색 원피스의 김정숙 여사는 같이 걷다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잠시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곧 뛰어가서 문 대통령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바지가 너무 짧다. 바지 하나 사야겠다. 다녀와요. 더 멋있네. 당신 최고네”라며 다시 배웅했다.

국가위신·국민자존 흔들어놓고

둘만의 첫 출근길이었다면야 누가 무슨 말을 하랴. 그런데 기자들 앞에서 전개된 장면이다. 일종의 연출이었다. 김 여사의 오버 액션이 (아마도) 그 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이분은 지난 18년 11월 28일 체코 프라하의 비투스 성당을 방문한 후 뒤쳐졌다가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라고 외치며 달리기를 했었다. 그 이듬해 9월 6일엔 라오스 비엔티안의 국제공항 환송식에서 문 대통령보다 서너 걸음 앞서서 레드카펫 위를 걸으며 당당히 답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관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주했던 곳이다. 임기 도중에 탄핵 당해 비워야 했던 그 집을 후임 대통령이 차지한 것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몰아낸 (그들의 표현으로) ‘촛불혁명’ 덕에 대통령이 된 입장에서는 한동안만이라도 표정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닐까?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하던 그 표정이 퇴임 날에도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웃음 또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빚이 되기 십상이다(의상, 보석 등 장신구류, 가방, 신발 등과 관련한 의혹들도 그냥 잊어라 할 수는 없다).


이런 장면들은 그야말로 삽화에 불과하다. 더 크게, 더 집요하게 평가‧심판 받을 일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그 직을 수행하면서 보였던 행태 및 결정들이다. 문재인 정권이 국민 사이에 되 메워질 수 없는 갈등·대립·증오의 골짜기를 만들었다는 건 3·9대선 과정에서 공포스럽게 확인됐다. 취임 1년도 안 돼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기도하는 개헌안을 발의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호와, 이로 인한 가치전도(價値轉倒) 현상은 국가 법체계와 국가기관의 존립 기반을 심대하게 뒤흔들어 놨다. 특정지역 주택 소유자를 반사회적 범죄인 취급하고, 조세를 징벌 수단으로 휘둘렀고, 국민은 그 경제적 위상에 따라 선·악으로 재단 당해야 했다. 무엇보다 위태로웠던 것은 북한 김정은 체제와의 무모한 화친정책이었다. 김정은에 대한 과공(過恭)으로 국가위신·국민자존이 짓밟혔다. 이런 일을 다 잊으라면 말이 안 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

미국조차 겪는 대통령제의 위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조국 씨의 법무장관 임명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말렸습니다. 지금은 국민 여론을 들어주셔야 된다, 그리고 여당과 지지자들을 설득해야 된다, 늘 어려울 때마다 국민만 보고 가자고 하지 않으셨느냐…”(SBS뉴스, 04. 09).

더불어민주당 측이 조 장관 임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했다. 그래서 임 전 실장은 조 씨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만류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대통령 개인 폰으로 문자까지 보냈지만 결국 조국 장관 임명은 강행되었다. 이 사람은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자신이 청와대 안에 있었으면 별 짓을 다해서라도 말렸을 거지만 당이 저렇게 나왔으면 다른 의사 결정을 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SBS 윤춘호 논설위원과의 인터뷰 기사인데 대통령으로서의 어떤 행위나 결정이든 결과적 책임은 대통령 몫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자신이 극구 만류했는데도 대통령이 결정했다는 것 아닌가.


한 때 청와대 제2인자로 불리기까지 했던 임 전실장의 토로(吐露)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는 그럴싸하게 여겨진다.


“5년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을 선사할 메시아를 기대하며 전쟁을 치르듯 하는 대통령제보다는 차라리 ‘덜 기대하고 덜 실망하는’ 의원내각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임 전 실장의)말은 국민통합이라는 과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이 말을 결론 삼아야 할 것 같다. 대통령제의 종가인 미국도 심각한 ‘대통령제의 위기’를 겪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야 더 말해 뭣하겠는가. ‘제왕적 대통령직’을 5년씩이나 누렸던 문 대통령이 “나 이제 떠나니, 날 찾지 말아주세요”라고 하는데서 그 자리가 갖는 위험성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잊히는 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건 아니다. 그는 책임과 관련해서는 잊혀서도 안 되고 자유로워서도 안 된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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