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파’ 이끈 금통위, 1.25→1.50%
고물가・美 빅스텝...하반기 추가 인상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총재 공백에도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 중앙은행 본연의 ‘인플레 파이터’로서 본격적인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를 이어나갔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서울 세종대로 본부에서 통화정책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뒤 지난달 ‘숨 고르기’에 들어간 바 있다.
앞서 지난 22일 금융투자협회가 채권 전문가 100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동결과 인상 의견은 50대50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당초 시장은 이달 금리 동결을 우세하게 점쳤으나, 가파른 물가 상승세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정책 예고 등으로 금리 인상 전망이 뒤늦게 탄력을 받았다.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결정회의는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오는 19일로 확정됨에 따라 주상영 금통위원이 의장 직무 대행 자격으로 진행했다. 금통위는 총재 공백이라는 부담을 안고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주상영 위원이 의장 직무 대행을 맡았음에도, 기준금리 인상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총재 공백 속에서 기준금리를 올린 사례는 처음이다.
사상 초유의 금리인상 강행은 그만큼 물가 상승 압력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3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로 10년 3개월만에 4%를 넘어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유가와 원자재가 급등에 따른 것이다. 식료품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009년 6월(3.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2.9%를 기록했다.
한은은 당분간 물가 상승률이 우크라이나發 공급측 요인으로 4%대를 나타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도 기존 전망치(3.1%)를 크게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물가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역시 치솟는 물가로 통화정책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 연준 내부에서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함께 이르면 다음달부터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양적 긴축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다음달 3~4일(현지시간) 열리는 FOMC에서 연준의 빅스텝이 기정 사실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이 빅스텝을 2번만 단행해도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수 있다. 금리 역전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번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양국간 금리 격차는 0.75~1.00%p에서 1.00~1.25%p로 다시 확대됐다.
여기에 차기 정부가 내달 10일 출범 직후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집행할 경우 유동성 확대에 따른 물가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50조원 규모의 추경 계획을 내세운 바 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상환 부담 가중, 우크라이나 등 대외 악재로 성장 둔화가 커지는 점은 부담이다. 최근 금융 시장은 미국의 고강도 긴축 가능성으로 요동치고 있는데, 국채 금리 또한 거듭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3년물 국채 금리는 8년 4개월만에 처음으로 3%를 돌파하는 등 올해 들어 72.7%나 뛰었다. 코스피는 2600대까지 밀리기도 했다.
이같은 이유로 다음번 금리 인상은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은 한은이 하반기 2번 이상의 금리 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2.00%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 역시 연일 가계부채를 강조하며 “금리 시그널을 통해 가계부채 관리를 유도해야 한다”는 매파적 발언을 내놓고 있다. 돌아오는 금통위 통화정책 예정일은 다음달 2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