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1억6000만원 임금에도…노조 "부족하다"
직원 4% 가입된 노조가 임금교섭 주도 주장 '왝 더 독'
고임금 경쟁, 소득 양극화 심화 등 산업 전반 악영향 우려
지난 2020년 삼성전자가 무노조 경영 포기를 선언하며 재계에서 일었던 우려가 2년 만에 현실화되고 있다.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을 앞세운 교섭전략, 법적 분쟁, 양대노총‧진보 정치권을 등에 업은 장외 투쟁 등 기존 대기업 강성 귀족노조의 행태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같은 혼란이 삼성전자 내에서 그치지 않고 대기업간 고임금 경쟁, 대-중소기업 소득 양극화 심화 등으로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지난 2일 사측이 단체교섭권 없는 노사협의회와 임금 인상안을 다룬 것이 불법이라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3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협의회를 통한 임금협상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여기에는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민주노총, 한국노동 간부들도 참석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삼성전자사무직노조와 삼성전자구미지부노조, 삼성전자노조동행, 전국삼성전자 노조 등 4개 노조에 소속된 직원은 도합 4500명 가량으로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11만3000여명의 4% 수준에 불과하다.
직원의 과반이 가입한 노조가 없는 만큼 삼성전자는 매년 2~3월께 사측인 사용자 위원과 직원을 대표하는 근로자 위원으로 구성된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 및 복지 수준을 협의해왔다.
하지만 노조측은 단체교섭권이 노조에만 있도록 한 헌법 제33조를 들어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IT 기업의 임금 급등에 따른 인력 유출을 우려해 올해 임금을 예년보다 큰 폭으로 올리기로 했다. 지난달 29일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임금인상률은 평균 9%(기본 인상률 5%+성과 인상률 4%)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높았던 지난해 인상률(7.5%)보다 1.5%포인트 오른 수치다.
워낙 임금수준이 높은 기업이라 9%의 인상률을 반영하면 금액으로는 상당한 규모가 된다. 이를 적용하면 올해 삼성전자 직원 평균 임금은 1억6000만원대, 대졸 신입사원의 첫해 연봉은 5150만원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유급휴가 3일 신설, 배우자 출산 휴가 10→15일로 확대 등 복리후생도 늘렸다.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장외 투쟁과 법적 대응에 나서는 노조의 행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시선이다.
노조가 노사협의회와의 임금협상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억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4%에 불과한 직원이 가입된 노조가 전 직원을 대표해 교섭에 나선다는 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노조 조직 커질수록 폐해도 확대 우려…파업, 성과급 체계 붕괴 등 '치명타'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의 규모가 더 커질수록 기존 대기업 강성노조에게 나타났던 각종 폐해들이 본격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노조원 숫자가 적어 파업을 단행해도 회사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노조원이 늘어난다면 반도체 수급난이 한창이거나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시점에 공장 가동이 멈출 수도 있다.
현재 사업부문과 개인별 직무 고과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는 성과급 체계도 무너질 수 있다. 대다수의 직원이 노조에 가입된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 지지율을 고려해 성과급 일괄 지급을 요구하는 게 보통이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이 때문에 사무‧연구직 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못해 IT 기업으로의 인력 유출로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말 비노조원인 사무‧연구직 책임매니저들 중 성과가 좋은 직원 10%를 선발해 500만원의 특별 보상금을 지급하는 ‘탤런트 리워드’를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노조가 반발하며 전체 직원에게 400만원의 특별격려금을 지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도 이런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반도체‧스마트폰 분야 연구개발(R&D) 인력 유출을 막느라 생산직까지 포함한 전 직원의 임금을 천문학적으로 올려줘야 할 수도 있다.
대기업간 임금경쟁 촉발, 대-중소기업 소득 양극화 등 파장 우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가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이라는 점이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의 임금 수준은 다른 기업들에게 일종의 바로미터가 된다. 삼성의 임금이 오르면 다른 대기업들도 불가피하게 임금을 올려야 한다.
특히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전문인력의 경우 임금에서 밀리면 인력 유출이 불가피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기업간 임금 경쟁은 우리 사회와 산업계가 당면한 최대 과제인 소득 양극화를 더 악화시킨다. 임금 인상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대-중소기업간 일자리 미스매치의 원인이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0인 미만 사업체의 평균 임금이 300인 이상 사업체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양극화가 심하다며 대기업들에게 지나친 임금인상을 자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무리 임금이 높더라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건 최상위 고임금 사업장인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라면서 “삼성전자에 노조가 설립됐을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 점차 현실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