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추석·주춤하는 국제유가 ‘기대’
불안정한 국제 정세·고환율 ‘걱정’
“10월 이후 당분간 고물가 각오해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정부 관계자들이 물가 상승세가 10월께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유가 하락과 지난해 기저효과 등으로 물가 상승세가 둔화할 것이란 예측이다. 반면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고환율 상황으로 내년 초까지 고물가가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차 방문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물가 고점(高點)을 언급했다. 추 부총리는 “9월, 10월까지는 불안한 양상이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6%를 훨씬 웃돌아 7%, 8% 물가가 상당 기간 고정화되는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정점이 언제 될 것이냐는 저희가 기본적인 경제정책을 할 때 갖는 예상으로는 3분기 말이나 4분기 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10월 물가 정점을 예상하는 이유는 우선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국제유가 상황이 진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7월 둘째 주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99.4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2월 넷째 주 이후 처음이다.
국제유가 하락은 원자재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개 원자재 가격 평균으로 미래 물가를 예측하는 CRB 지수가 최근 하락 조짐을 보인다. CRB지수는 18일(현지 시간) 기준 305.96으로 연고점인 지난 6월 9일(351.25)보다 12.9% 떨어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물가 개입도 효과를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민생안정 방안으로 20일부터 소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 분유, 커피 원두 등 일부 수입 축산물에 0% 할당관세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할당관세 효과와 함께 장마철 이후 채소 작황이 좋아지면 물가 상승세도 둔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른 추석도 정부 입장에선 호재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소비자들은 추석 때 구매한 성수품을 길게는 한 달까지 사용한다. 이 때문에 농축산물 소비자물가지수는 추석 이후 10~20% 정도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올해 추석은 9월 10일로 예년보다 빨라 10월부터는 물가 상승세를 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10월에 물가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기저효과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는데 지난해 10월부터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올해는 10월부터 물가 상승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최근 2개월간 많이 떨어졌다”며 “물가상승률 정점은 6~8월 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유가·환율·전쟁·코로나까지…악재 여전
정부의 기대 섞인 예상과 달리 내년 초까지 고물가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워낙 많고 특히 그런 변수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에는 고환율이 가장 걱정이다. 지금처럼 원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 수입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판매(수출)하는 우리 경제 형태에서는 수입 물가가 소비자물가에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평균 1235원에서 20일 기준 1309원까지 오른 상태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137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달러 강세는 결국 원자재 가격 하락 효과마저 상쇄할 수 있다.
최근 소폭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등락을 거듭하는 국제유가도 불안 요소다. 지난주 배럴당 96.05달러까지 하락했던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18일 다시 100달러를 돌파해 102.60달러를 기록했다. 천연가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이렇듯 불안정한 국제유가 상황은 우리 물가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정부는 이미 4분기에 이들 공공요금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여기에 외식 등 개인 서비스 부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여도가 계속 커지고 있다. 개인 서비스 품목은 한 번 가격이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성향이 있어 고물가 상황을 고착시킬 가능성이 크다.
박영범 한성재 경제학과 교수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의 지정학적 갈등 같은 불확실한 변수들이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이번 물가상승은 해외 공급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터라 정책으로 풀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4분기에도 전반적인 물가 수준은 예년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하반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으로 경기침체까지 오면 물가가 더 높아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환율이 더 올라가면 수입 물가가 엄청 뛰게 된다. 환율 문제를 안이하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