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합동연설회, 원주~대구 넘나들며
실명 공격→실명 반격→실명 재반격
李 "朴 공천 걱정 안해도 되도록…"
朴 "내 공천 걱정 아니라 당이 걱정"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놓고 경쟁 중인 이재명 의원과 박용진 의원 간의 신경전이 첫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자신을 향해 맹공을 가해오는 박용진 의원을 상대로 이재명 의원이 "공천 걱정 말라"고 견제구를 던지자, 박 의원은 즉각 "공천이 아니라 사당화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민주당은 6일 강원 원주 한라대학교 대강당과 대구 엑스코 그랜드볼룸에서 각각 강원과 대구·경북 권역 합동연설회를 열었다. 3명의 당대표 후보와 8명의 최고위원 후보가 대의원들을 상대로 정견 발표를 하고, 그간 해당 권역에서 진행된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선공은 박용진 의원이 날렸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강원 연설회에서 "사적 감정을 가지고 전당대회를 치르지는 않겠지만, 당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선명한 노선 투쟁은 해야 한다"며 "계양을 '셀프공천'으로 '나 혼자 산다'는 자생당사(自生黨私) 노선이 우리 당의 노선이 됐던 순간, 우리 당의 유능한 사람들이 줄줄이 낙선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박 의원은 "이재명 후보는 (자신 때문에 낙선한) 이 동지들과 당원들에게 자신의 '셀프공천'에 대해 한마디 해명도, 사과도 없었다"며 "오히려 당원들이 자신의 출마를 원했고 여의도 정치권만 반대했다면서, 당의 승리를 생각해 계양을 출마를 반대한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또다른 남탓이자 동문서답·적반하장"이라고 실명 비판을 가했다.
당의 온라인 당원청원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당헌 제80조 개정 운동에 대해서도 "어느 특정인을 위해 당헌을 개정한다면 이보다 더한 사당화가 어디 있겠느냐"며 "누구 하나 살리자고 국민의힘만도 못한 당헌을 만든다면 선당후사는 커녕 말그대로 '나만 살고 당은 죽이는' 자생당사, 사당화 노선"이라고 질타했다.
이날 박 의원의 이 의원을 향한 공격 수위는 당 안팎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는 관측이다. 이 의원 지지 성향의 일부 대의원·권리당원들은 박 의원의 '면전 실명 비판'에 허를 찔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거나 고성을 지르며 박 의원의 연설을 훼방 놓기도 했다. 박 의원은 물러서지 않고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많은 당원들이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맞섰다.
뒤이어 연설에 나선 이재명 의원은 박용진 의원의 실명을 언급하며 반격을 가했다.
이재명 의원은 연설 도중 "다름은 배제나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분담을 통한 시너지의 자산"이라고 운을 떼더니, 양손을 들어 크게 제스처를 취하며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해서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당 확실하게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의 이러한 발언은 자신을 향한 박 의원의 '자생당사' '사당화' 공격을 '공천 걱정'이라는 프레임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시도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앞서 이재명 의원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사당화 우려'라는 말을 왜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며 "너무 본인들 공천 걱정 말고 당을 위해 할 일을 다하면 국민과 당원들이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당대회 아수라장"…비난·야유에도
'1위 주자' 겨냥 '2위 주자' 집요한 공세
"李, 외면하려 하겠지만 가만히 맞고만
있는 성격도 아냐…뜬금 반격 가능성"
당에 대한 걱정이 자신의 공천에 대한 걱정으로 치부당하자 박 의원측은 격분한 반응을 보였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강원 원주에서 대구로 이동하던 도중 KBS라디오 '시사본부'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의 잘못된 태도를 비판하니까 전당대회장이 아수라장"이라며 "비난도 나오고 야유도 보내는데, 듣기 싫은 소리라고 '내려오라' '집어치우라' 얘기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이 우리 민주당을 신뢰할 수 있을지 아쉬움이 든다"고 토로했다.
박 의원측 관계자도 이 의원이 경쟁 당권주자를 향해 '공천 걱정 말라'고 한 것은 "어이가 없다. 명백한 도발 행위"라고 분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오후 합동연설회에서 박용진 의원은 이재명 의원을 향해 재반격에 나섰다. 박 의원은 "앞서 강원도에서 우리 이재명 후보가 '박용진 공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당 만들겠다'고 했다"며 "나는 내 공천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을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 의원들도 다 민주당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당이 사당화 노선을 걷는 것"이라며 "계양을 '셀프공천' 때문에 전국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있는데도, 어떠한 해명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압박했다.
한편 이재명 의원은 오후 대구 연설에서 "다름은 역할분담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원천"이라는 대목을 말하면서도 오전 강원 연설 때와는 달리 박용진 의원의 실명이나 공천 문제 등은 거론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맞붙으면 상대 주자인 박 의원을 키워줄 뿐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의원과 박용진 의원이 각각 '1위 주자'와 '2위 주자'가 되면서 이 의원을 향한 박 의원의 십자포화는 향후 순회경선 과정에서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이 박 의원의 일방적 공세를 언제까지 인내해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재명 의원은 자신의 출생지인 대구·경북 순회경선에서 75%의 표를 쓸어담았지만, 박용진 의원도 득표율 20%를 넘기며 선전했다"며 "박용진 의원과 강훈식 의원의 득표율 차이가 커서 박 의원이 차점자이자 추격자로서의 위상을 선점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차점자인 박용진 의원이 향후 순회경선 과정에서도 이재명 의원을 향해 집요하게 공세를 퍼부을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절정의 신경전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 의원은 가급적 외면하려 하겠지만, 가만히 맞고 있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에 오늘처럼 '박용진 공천 걱정 말라'고 뜬금 반격에 나설 수도 있다. 이러한 양자 간의 공방이 관전 포인트"라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