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 채무조정" 논란 확산
제한적 적용·패널티 감수 고려해야
정부가 금융 민생안정 플랜의 본격 가동을 예고한 가운데 이른바 새출발기금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빚을 한 번에 90%까지 탕감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과도한 대출 원금 감면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 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지원 대책인데다 장기간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포기하더라도 이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한계에 몰린 차주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인 만큼, 지나친 확대 해석보다는 정확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누적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잠재 부실에 대응하기 위한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새출발기금의 대상은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금융권에서 대출 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 지원을 받고 있거나, 손실보상금 또는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수령한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이다. 정부는 새출발기금 자금으로 이들의 부실 대출 채권을 사들여 채무를 조정해줄 계획이다.
문제는 이를 통해 빚 대부분을 탕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불거졌다. 실제로 금융위가 마련한 새출발기금 플랜 내에는 부실 차주의 대출 원금 중 60~90%를 아예 감면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기존 대출을 장기분할상환 계약으로 전환하면서 금리를 연 3~5%로 낮춰주겠다는 방침이다.
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최고 90%인 새출발기금의 대출 채권 원금 감면율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이를 노리고 고의로 대출을 연체하는 차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실상을 보다 정확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제기된다. 우선 짚어봐야 할 대목은 새출발기금이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이나 법원의 개인회생 등과 동일한 원칙 하에 실시된다는 점이다.
즉, 이번 새출발기금을 기존에 없던 초유의 채무조정 방안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다만, 금융당국이 코로나19 피해 상황과 정부의 재정 지원을 고려해 대출 원금과 이자 감면율 일부 상향하다 보니 오해가 커진 측면이 있다.
손쉽게 대출 원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출발기금은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과 동일하게 상환능력을 상실해 90일 이상 장기연체를 겪고 있는 금융채무불이행자, 과거 신용불량자로 불릴 수준의 차주만을 상대로 시행된다. 채무 형태도 신용 대출만 대상이며, 담보 대출은 연체가 90일이 넘더라도 원금을 감면받을 수 없다.
패널티도 만만치 않다. 새출발기금 지원을 받은 차주는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면서 향후 신규 대출과 신용카드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등 7년 동안 정상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 상환 능력이 있음에도 원금을 탕감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대출을 연체할 것이란 전망은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밖에도 60~80% 수준의 채무 원금 감면은 해당 차주가 보유한 재산을 초과한 과잉 부채분에 한해서만 이뤄진다. 예를 들어 부채가 1억원인 차주의 부동산과 동산 등 자산이 1억5000만원이라면, 과잉 부채는 없는 것으로 계산돼 원금 감면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또 과잉부채 대비 소득이 높을수록 감면율은 낮아지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새출발기금의 원금 감면율 90%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의 고령자 등 사실상 대출 상환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한해 적용되는 감면율로서 현재 신복위 워크아웃 제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내용이 동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