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겸 스포츠정책연구소장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 건립 예산지원 근거된 연구 내놓아
"대형 스포츠이벤트 유치 때 사후 시설관리 계획 평가 비중 높여야" 주장
학사·석사·박사 모두 도시공학을 하고 필드에서 도시개발사업 및 설계, 컨설팅을 하다 커리어가 체육으로 바뀐 지 어언 8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원 출신으로 이제는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스포츠정책연구소장 업무까지 수행하게 된 김미옥 교수(50).
비체육인이었던 김미옥 교수는 효율적인 업무 파악을 위해 관심 없던 골프까지 시작할 정도로 열정의 ‘체육인’이 됐다.
‘시설 전문가’답게 인터뷰 내내 시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체육 지도자와 체육 프로그램에 편중된 현 상황을 짚으며 “시설 없이는 스포츠 발전도 없다”고 주장하는 김미옥 교수가 강조하는 메시지에는 우리나라 체육 시설 관리의 현주소, 정책 추진에서 담겨야 할 고민들, 그리고 미래의 방향성도 흐르고 있다.
Q: 현재 직무에 대해 소개해 달라.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이자 스포츠정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다른 교수분들이 학문과 교육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면, 저는 강의도 하지만 산학협력에 중점을 두고 외부 산업과 연계해야 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스포츠산업학과에서 주로 강의하는 내용은 스포츠산업 영역 안에서 스포츠 시설이다. 또 요즘 대학에서 많이 권장하고 있는 캡스톤 디자인을 강의한다. 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배운 것을 4학년 때 응용해 구현해보는 공학 베이스 실습을 이끌고, 지역 사회 또는 기업과 연계하는 작업과 창업의 디벨롭 과정도 다룬다.
Q: 도시공학 출신인데 체육시설 관련 업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정책실에서 스포츠시설 연구를 담당하는 박사님이 계셨다. 관련 업무를 버겁게 홀로 하셨다. 그러던 중 공공체육시설균형중장기배치 관련 업무라는 큰 일을 또 맡게 되셨다. 혼자 할 수도 없었고, 공간을 분석하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지인의 소개로 제가 그 박사님의 일을 돕게 됐다. 당시만 해도 체육계 쪽에서 공간 분석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2013년 일을 도왔고, 2014년 정식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체육시설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체육과는 먼 사람이었는데(웃음).
Q: 실제로 즐기는 스포츠 활동이 있나.
보거나 즐기는 스포츠는 사실 없었다. 최근에는 에콜리안 골프장 프로젝트 때문에 골프를 하게 됐다. 그린피 등 골프장 수익구조를 분석해야 하는데 처음에 내가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골프를 시작했고, 즐겁게 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 골프연습장도 있고. 아직은 골린이다.
Q: 체육시설 정책 연구 전문가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산학협력교수이면서 정책을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외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한다. 작년에는 문체부 공공체육시설 지원 사업, 국민체육진흥공단 에콜리안 골프장 시설 추가 조성 관련 등에 대한 타당성 조사 등을 했다. 올해는 인프라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정책 포지션까지 나아가 스포츠 레거시 중장기 로드맵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제가 이렇게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체육시설 정책 관련 전문 연구원이 너무나도 희소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제가 현황도 잘 파악하고 있고, 방향성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Q: 공공체육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그렇다보니 특정 동호회만 독점한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공공체육시설 확충 방안은 있나.
동호인들 독점 논란도 결국 수급이 맞지 않아서 발생한 현상이다. 열혈 유저들인 그들을 비판만 할 수 없다. 결국 공급을 늘리는 것이 해법이다. 체육시설이나 건축물 등은 단기에 조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체육시설도 사전 준비에 이어 준공, 인허가 등을 감안하면 최소 5년은 소요된다. 신축할 때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상당한 재원 투입도 필요하다.
그런데 유휴 공간을 잘 찾아 활용한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아서 그렇지 지자체들은 많은 노력을 해왔고 성과도 있다. 대로나 교각 하부 공간을 활용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선형으로 긴 공간이라 체육 활동하기에도 좋다. 예를 들자면 부산 수영고가도로 하부에 조성된 비콘그라운드의 익스트림 플레이 그라운드, 서울 성북구 종암동 고가하부, 부천 상동 외곽순환고속도로 하부 해그늘 생활체육공원 등이 있다. 주거단지 보다 소음이 있는 공간에 시설을 조성하면 빛공해나 소음공해 시비도 막을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
유휴지 공모사업도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민간을 대상으로 유휴지를 공모한다. 유휴지를 발굴한 민간에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듣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일부 공공성을 담보하고 나머지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이용권을 주는 형태다.
Q: 지자체에서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시설의 사후관리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현상은 여전하다. 시설 면에서 대형 이벤트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사항은 어떤 것이 있나.
사후관리 문제는 평창올림픽 때도 경험했다. 사실 평창뿐만 아니라 모든 동계올림픽의 딜레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이 없었다면 ‘과연 강릉 KTX가 이렇게 빨리 연결 됐을까’라는 점에서 저평가된 부분이 있는데 아쉽다. 어찌됐든 시설 사후관리 계획을 사후에 세우는 꼴이 되면 안 된다. 이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유치 승인 때 사후관리계획 부분을 비중 크게 반영해야 한다. 유치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시설을 만들 때도 클러스터링이 되어야 한다. 개별, 단독이 아닌 한 곳에 집중적으로. 집객 요인이 되도록 가능한 시설을 집적시켜 조성해야한다. 대회 폐막 후에도 해당 공간이 복합용도로 활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도시 계획적으로도 접근해야 한다. 캐나다 휘슬러가 좋은 예다. ‘이 도시를 스포츠로 먹여 살리겠다!’는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에 힘을 줬다. 런던올림픽도 낙후된 이스트 런던을 개발시키겠다는 것이 유치의 목적이었다. 도시 전반의 비전과 연계해서 추진해야한다.
Q: 체육시설 안전에 대해 칼럼도 많이 쓰셨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전히 미비한 부분이나 더 준비해야 것들은 어떤 것이 있나.
우리 사회가 체육시설 안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다. 당시 사고로 인해 6개월 마다 체육 시설의 안전 점검이 제도화됐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특법) 등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지만, 일정 규모 이상 시설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진단의 법제화와 체육시설 안전 모니터링이 시작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현재는 체육시설에 대한 안전을 사실상 지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안전을 지도자가 다 관리할 수 없다. 지도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시설 안전까지 책임지려면 제대로 된 지도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안전 전문 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체육 시설에서는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건축가는 아니지만 안전을 체크할 수 있는 관리자는 꼭 있어야 한다. 지도자들이나 업주들에게도 안전교육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너무 기본적인 요소다. 그러나 점검만 제도화 해놓고 아직까지 이런 게 없다. 안전재단 통계를 보면 체육활동 부상발생률은 70%에 이른다. 물론 체육 자체가 부상을 유발하지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전 인지만 하더라도 발생률은 줄일 수 있다. 이용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안전 교육을 할 인력도 필요하다.
Q: 체육계에 있는 분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면.
제가 다른 영역에 있다가 체육계로 왔다. 어떤 영역이든 비슷하겠지만, 처음에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배타성이다.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타 분야와의 협업은 더 필요하다고 본다. 폐쇄성을 극복해야 한다. 스포츠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선한 콘텐츠인가. 예를 들어 법률 쪽은 분쟁으로 점철 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체육은 모두가 즐거워할 콘텐츠다. 이런 좋은 콘텐츠를 놓고 다른 전공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켰으면 좋겠다. 타 전공자로서 나 역시 그런 협업에 대한 책임감은 늘 안고 있다.
Q: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1988 서울올림픽 이후 체육정책이 생활체육으로 전환되면서 국민체육센터가 전국 시군구별로 하나씩 세워졌다. 목표했던 설립 숫자 자체는 달성했지만, 여전히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좀 더 가깝게 좀 더 많이 공급하자는 취지로 문체부에서 ‘생활 밀착형’이라는 용어가 붙은 정책을 검토했다.
마침 2018년 문재인정부 때 생활SOC라는 정책이 있었는데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 사업이 포함됐다. 검토와 추진 시기에 제 연구가 거의 그대로 반영되면서 예산 지원의 근거가 됐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지역에 얼마를 더 공급하느냐, 지역 수요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체육센터에 대한 접근성은 어떤 기준으로 따져야 하는가, 효율적인 추진방식은 어떤 것인가 등을 아우르는 연구였다.
예산 지원의 근거가 됐던 저의 연구로 30년 동안 공급했던 것만큼의 국민체육센터가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라는 또 다른 새로운 이름으로 3년 동안 200개 내외 공급됐다. 2조만큼의 체육 센터를 세우는데 제 연구가 기여한 셈이다. 장애인을 위한 '반다비국민체육센터' 추진 때도 저의 연구가 예산 지원의 근거가 되어 100개가 세워졌다. 약 300개의 공공체육센터를 세우는데 내 연구가 기여했다는 것은 커리어 중 기억에 남는 뿌듯한 성과다.
Q: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다. 직업으로서 체육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체육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도자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도자는 굉장히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일을 하다보면 시설 운영 메커니즘이나 행정 등을 파악해야 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업무 영역은 더 넓어진다. 지도라고 하는 영역이 체육에서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든다든지 새로운 창업 형태도 구상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공공체육시설도 다양한 주체가 운영하면서 일으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영국은 공공이 시설을 만들면 스포츠 사회적 기업에게 기회(운영권)를 부여한다. 일본도 지정관리제를 도입, 공공체육시설이나 문화시설들을 공모 형태로 민간이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 분야에서도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들이 많이 펼쳐지고 있다. 청년들이 폭넓게 알고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Q: 끝으로 체육시설과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포츠와 관련된 정책을 보고 만드는데 참여하며 지켜보니 많은 사람들은 지도자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시설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 시설이 있어야 프로그램도 펼칠 수 있고, 지도자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면서 고용이 창출된다. 경기력은 좋지만 아직 인프라 수준은 낙후되어 있다. 집단 지성을 통해 이슈가 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 몇몇만 시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외쳐봐야 한계가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공론화했으면 좋겠다.
최근 ‘테린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테니스를 칠 곳이 많지 않아 불만이 많다. 테니스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가 ‘아파트 주택법’과도 관련이 있다. ‘테니스를 치기 원하는데 테니스장과 같은 시설이 왜 부족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불평만 늘어놓으면 분쟁만 일어날 뿐이다. 동호회 독점만 탓할 게 아니다. 시설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이 따라야 한다.
1960년대 독일 정부와 올림픽협의회는 스포츠시설 확충이 담긴 스포츠진흥정책 '골든 플랜'을 내놓았다. 체육시설을 집중적으로 조성한 황금계획으로 불린다. 그 계획에 ‘체육시설 없이 스포츠 없다’는 말이 있다. 시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포츠도 없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꼴이다. 체육시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함께 해야 우리가 한껏 즐기고 누릴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