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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하돌②] ‘일본식 문제점’까지 그대로 흡수…“건강한 자정작용 필요”


입력 2022.08.31 07:30 수정 2022.08.30 10:2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정서 낯설게 작용

'괴물 신인', '실력파', '완성형 아이돌' 케이팝 아이돌에게 붙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일본 지하돌에게는 실력보다는 음악 외 외형적인 수식어들이 더 자연스럽다.


지난 2018년 방송한 엠넷 ‘프로듀스48’에서 일본 참가자 AKB48, HKT48 멤버가 우리나라 서바이벌에 참여하며 심사위원에게 “뭐로 뽑힌 건지 모르겠다”라고 혹평을 들은 바 있다. 이 한 장면으로 실력을 우선시하는 한국 아이돌과 음악성보다는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초점을 두는 일본 아이돌 간의 문화 차이가 단번에 설명됐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실력이 모자라도 응원해 주는 현상 자체를 팬들이 즐기고 있지만, 이로 인한 좁은 거리감 때문에 문제점들도 쉽게 발견된다. 2019년 일본에서 '지하 아이돌 성추행 팬 체포 무너진 아이돌과 팬의 거리'라는 헤드라인으로 팬이 지하 아이돌 멤버의 자택 근처에 숨어있다가 도착하자 현관 앞에서 넘어뜨린 후 외설 행위를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미성숙한 상태에서 데뷔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콘셉트에서 일부 불안하거나 연약한 면모를 부각되기도 한다. 남성에게 친근감과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활동하는 그룹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0대부터 20대 초반의 지하돌을 지원하며 애정과 사회적 지위 대리만족을 느끼는 중년 남성 팬들이 많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지하돌 문화가 잇따른 경제 불황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중년 남성들의 지배욕을 해소하며 성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있다.


'멘헤라 셀링', 불안한 정신상태를 전략으로→동정·공감 유발


여성 인권과 관련해 여러 가지 담론이 오가고 있는 한국 사회와는 동떨어진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지하돌의 상황을 본다면 일본의 지하돌이 겪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큰 문제로 번진 적은 없으나 무례한 요구나 사적으로 다가오는 팬들도 존재한다. 특히 현직 관계자들은 한국 지하돌이 일본 지하돌의 '맨헤라'까지 그대로 가져와 활용하는 경우를 우려하고 있었다.


'멘헤라'는 ‘멘탈 헬스+e’r(mental health +er)의 줄임말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본 속어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우울한 상태를 털어놓음으로써 돌봄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행위다. 일부러 자해한 사진을 올린다거나 괴상한 사진을 올리며 "힘들지만 극복하고 싶다"라는 말로 동정심, 공감의 정서적 연결을 시도한다.


한국의 지하돌 멤버들 중에서도 개인 SNS에 "죽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은 살기가 어렵다"라는 말로 관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 연구가 규이는 "맨헤라는 일본에서도 마니악 한 음지 문화다. 일본에서 참여 연구를 했을 때 실제 맨헤라에 심취해 있는 팬들의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생활이 팍팍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해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맨헤라를 통해 연출된 이미지에서 섹슈얼한 텐션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라며 "한국 아이돌은 대중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다. 공황장애나 개인의 불행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익숙한 일반 대중이 '공황장애 와서 힘들다', '살기 싫다'라는 말을 하는 지하 아이돌을 봤을 때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상태를 모에화(호감의 상태)하는게 문제다. 전략적인 자해 행위가 용인되기 때문에 지하돌이 스스로를 끌어내리면서까지 팬들에게 관심을 호소한다. 이런 행위가 있으면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본다. 좋은 건 받아들이지만 지양해야 할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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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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