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48화 단주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가 싶더니 들판엔 벼가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서늘했지만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높고 뜨거웠다. 여름의 태양이 폭염을 쏟아 붓는 공습이라면 가을의 태양은 화롯불에 달궈 지상에 내리꽂는 바늘 뭉치였다. 한낮에 밀짚모자도 쓰지 않고 들과 산으로 다녔다가는 가을햇살에 쪼인 목덜미가 따가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교차가 심한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사과, 대추, 밤 따위 과일들이 영글어 가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오묘한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지글거리는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냉온탕을 오가는 가을을 맞으면 대자연은 결실을 맺게 해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고 시련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는 명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석규는 동구 밖 황금들판에 가로질러 나있는 농로를 아침운동 삼아 뛰다 걷다하며 한 바퀴 돌고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속옷이 눅진할 정도로 등에 밴 땀이 건강을 회복한 증표인 것 같아 김석규는 기분이 상쾌했다. 마을 안길을 따라 키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오래된 흙돌담 집들이 불규칙하게 이어졌다. 채 서른 호가 되지 않는 집들은 절반 넘게 비어있었고 젊은 사람이라곤 하나 없이 노인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마을은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문득 늙은 개가 짖는 처량한 소리가 허공을 때리며 웅숭깊게 들려왔다. 김석규는 어느 빈집 담장 위로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감이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알코올성 편집망상이었다니. 아, 진짜 쪽 팔려서.’
처음으로 주치의 이희수의 설명을 알아듣고 김석규가 대번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알코올중독도 남에게 내놓기 창피한 병명인데 그것보다 심한 편집망상이라니. 알코올중독 너머 편집망상. 무슨 시 제목도 아니고.
이희수는 알코올의존에서 편집망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편집망상을 벗어난 지금은 역순으로 당연히 알코올의존증이 나타날 것이고, 그래서 금단현상을 겪을 거라고 김석규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희수는 술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술은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고자 하지만 사람이 술을 좋은 것이게도 하고 나쁜 것이게도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술을 담는 그릇인데 불행하게도 김석규는 그만한 그릇이 못 되니 술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다시 말해서 술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희수는 술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라고 권고했다. 김석규가 편집망상에 시달린 건 술에 대한 과도한 혐오가 원인이라는 진단이었다. 이희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알코올중독환자의 90%이상이 퇴원 후 다시 술을 마시는데 김석규 역시 재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걸 대비해서 술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재발했을 때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김석규의 귀에 이희수의 설명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김석규의 뇌리엔 오로지 술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어처구니없게도 술빛 바다 위에 술고래가 유영하는 평화로운 풍경이 환시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김석규는 술빛 찬란한 세상의 풍요로운 술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커다란 황금 잔이 철철 넘치도록 술을 가득 부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잔 가득 술을 들입다 부을 수는 있지만 그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젖과 꿀이 술과 함께 흐르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음주할 수단이 없다는 건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술을 끊는 건 본인의 의지입니다.”
“그럼 병원은 왜 있고 의사는 왜 있는 거죠?”
“의사는 환자가 술을 끊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결국엔 환자가 종지부를 찍어야 해요.”
김석규의 물음에 대한 이희수의 간결한 답변이었다. 김석규는 뇌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술이라면 생각지도 못하게 하고, 몸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술이라면 마시지도 못하게 만들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이희수는 아직 그런 방법은 세상에 없고 현재 신경안정제 정도가 금주 보조제로 쓰이고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치료제는 환자 본인의 강력한 의지라고 역시 하나마나한 소리만 되풀이해 들려주었다.
어쨌든 김석규는 원하든 않든 간에 금주의 세계에 입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첫 관문이 바로 금단현상이었다. 금단현상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낯설고 당황스러운데다 그 과정 자체가 공포와 고통의 스펙트럼에 다름 아니었다. 지진이나 쓰나미, 화재와 건물 붕괴 같은 재해를 무방비로 당하거나 악랄한 독재정권의 비인간적 고문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만 같았다. 김석규는 세포 하나하나에 낙인처럼 찍힌 금단현상을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며 만약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차라리 목숨을 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금단현상에 들어선 김석규가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진전현상이었다. 온몸이 아주 강렬한 지진을 만난 것처럼 대책 없이 덜덜 떨렸고, 또한 몸뚱이를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리는 듯 어지럽고 메스꺼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게 잦아들자 이번엔 신경 가닥을 핀셋으로 잡아당기는 듯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공포와 고통 속에 일주일을 보낸 어느 날 비로소 평온한 하루가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불현듯 바퀴벌레 같은 곤충들이 재빠르게 망막을 뚫고 들어오더니 머리통을 들쑤시고 온몸의 피하지방을 헤집고 다녔다. 이른바 섬망현상이었다. 김석규는 블랙아웃처럼 단속적(斷續的) 기억장애에 시달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자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런 날이면 김석규는 침대에 결박당한 채로 꼼짝도 못하고 지내야만 했다.
금단현상과 섬망현상이 워낙 강력했던 탓인지 그 고비를 넘긴 김석규는 한동안 비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혀있었다. 근육이 이완되고 뼈마디가 모조리 탈골된 상태로 무중력 공간에 방치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달리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걸음을 걸으면 마치 허공을 걷는 듯 다리가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장기관에 질소가스를 주입해 놓았는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머릿속은 하얀 벽지를 발라놓은 텅 빈 방처럼 아무 기억도 없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김석규는 심심유곡의 깎아지른 폭포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배경으로 장식한 8월의 달력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7월 중순부터 보름가량 지속된 금단현상이 끝나고 바야흐로 환자 본인의 의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하는 본격적인 금주가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금단현상이 광풍처럼 몰아칠 때는 환자의 의지력 따위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오로지 미물처럼 몸의 반응만 무의식 아래서 격해질 뿐이었다. 온 신경이 한 방울의 알코올을 정점으로 하여 그물코처럼 얽혀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술을 향한 무의식적 갈망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영역까지 컨트롤해야 하는, 다시 말해 스스로 생산해내는 음주갈망 합리화 논리를 거부하고 부정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전형적인 조절망상 단계에 진입한 것이었다. 가령 술은 나쁜 게 아닌데 내가 조절을 못해서 그렇다며 먼저 자신을 책망하고, 그 다음엔 조절만 하면 술을 못 마실 것도 없다며 스스로를 두둔하게 되는 것이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