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으로 증권사 직격탄 맞아
금융당국의 5조 유동성 공급에도 시장 불안감 여전
위기감 고조로 루머 확산...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올 한 해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긴축 기조 강화로 국내외 증시가 침체되면서 증권사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여기에 최근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그야말로 업친데 덮친격,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불확실성 확대 속에서 리스크 증대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위기의 파고를 헤처가려는 증권업계의 모습을 살펴본다.<편집자주>
3분기 실적 시즌이 한창으로 증권사들의 성적표가 줄이어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증권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면서 증시가 침체됐고 이에따른 전년대비 실적 악화는 예상돼 온 결과였다.
하지만 한 지방자치 단체장의 채무보증 불이행(디폴트) 선언으로 촉발된 레고랜드발 부동산 PF 사태라는 돌발 이슈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시름이 더욱 깊어진 모습이다.
시작은 지난 9월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언이었다. 김 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의 발언으로 강원도가 춘천시 소재 테마파크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만기일 하루를 앞두고 지급보증을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는 바로 채권 시장 냉각과 함께 자금 시장 경색으로 이어졌다.
지자체가 보증을 선 자금도 회수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민간기업이 발행하는 채권(회사채)이나 발행어음에 대한 신뢰도는 급전직하했다. 자금 회수 우려가 커진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는 결과로 이어졌고 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번 사태로 부동산PF와 채권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며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장내외 채권거래금액은 354조원으로 9월(431조원)에 비해 약 80조원 가량, 8월(460조원)과 비교하면 약 100조원 이상 줄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2009년 1월(323조원)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월 450조원 안팎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레고랜드발 사태가 채권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기존 주력이었던 주식과 채권의 의존도 탈피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부동산 PF 비중을 확대해 온 증권사들은 그대로 유탄을 맞게 됐다.
저금리 시대 부동산 시장 호황을 타고 부동산 시행사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ABCP나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해 높은 이자 수익을 거둬왔는데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경기에 이번 사태까지 겹치면서 관련 시장이 냉각되면서 타격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PF 채권을 담보로 ABCP와 ABSTB를 발행해 온 증권사들로서는 투자 심리 악화로 차환되지 않는 물량을 직접 매입하는 사례가 지속 등장했다. PF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차환이 안 되면 신용 보강을 한 증권사가 자체 자금으로 보충해야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19일 만기된 완주 PF ABCP를 전액 매입했다. 완주군이 지급보증을 섰지만 투자자들이 차환을 거부하면서 주관사가 자체자금으로 사들인 것이다. 앞서 교보증권은 지난달 12일 만기된 천안 북부BIT리치제일차 자산유동화 ABSTB를 전액 매입했다. 현대차증권도 신용보강한 전단채 중 지난달 19일 만기인 물량 일부가 차환 발행이 안돼 자체 자금으로 막았다.
현금성 자산을 넘는 규모의 보증 이행이 필요해지면 보유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산 평가액이 낮아지는 것이 불가피해 다시 단기 자금 및 채권 시장에 악영향을 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당국의 증권사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는 했다. 한국증권금융이 지난달 26일부터 중·소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환매조건부채권(RP)과 증권담보대출을 통해 3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개시했고 산업은행이 2조원을 증권사 기업어음(CP) 매입에 투입하기로 하는 등 총 5조원의 자금을 쏟아 부었다.
한국은행도 RP매매 대상증권을 확대하고 증권금융 등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매입을 실시하는 등 단기금융시장 안정에 전력하는 모습이다.
증권사들도 최근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ABCP 물량을 업권 내에서 소화하는 방식으로 자금경색 문제 해소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업계와 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미 올 들어 주식시장 침체로 인해 체력이 악해질대로 약해진 상황에서 맞은 이번 부동산PF 사태가 더욱 부담스럽게 다가온 분위기다.
자금난으로 인한 위기감과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일부 건설사의 부도설과 증권사의 매각설 등 악성 허위 루머도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루머는 회사의 평판과 주가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우려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상호 협력을 통해 합동 루머 단속반을 가동해 특정 기업과 관련한 신용 및 유동성 관련 위기설 등 악성 루머와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집중 단속하기로 했지만 이미 시장 불안감이 커진 상태라 악성 허위 루머가 계속 양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점진적인 회복이 기대됐던 주식 시장은 여전히 침체인 상황에서 부동산 PF 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활로 모색이 더욱 어려워지는 양상”이라며 “불확실성 리스크가 더욱 증대된 상황에서 올해 인플레이션을 넘어 내년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향후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