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 절반 이상 "현 상황 IMF‧2008 위기와 같거나 더 어려워"
법인세 인하 통한 기업부담 완화 절실하지만…거대야당 '반대' 고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중국 패권다툼, 에너지가격 급등 등 글로벌 정치‧경제 리스크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나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의 경제위기가 도래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법인세 인하 등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 추진에 합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3일 발표한 ‘최근 경제 상황과 주요 현안’에 대한 경제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7%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IMF 외환위기 및 2008 금융위기 때와 유사하가나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국내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세부적으로 응답자의 27.1%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답했고, 18.7%는 IMF 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보다는 더 어렵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거나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한 응답자(6.9%)도 있었다.
경제전문가들은 당장 내년 경제성장률부터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응답자 79.4%는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이 2.0% 이하에 머물 것으로 봤다. 응답자들의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87%로 IMF 전망치(2.0%)나 한국은행 전망치(2.1%)보다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경제전문가들은 최소한 내년은 경제위기 상황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봤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53.9%는 우리 경제가 정상궤도로 회복되는 시점을 2024년으로 예상했다. 2025년 이후라는 응답도 24.7%에 달했다. 도합 77.9%의 응답자가 내년 중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내년 심각한 경제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은 사실상 중론에 가깝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 자체가 악화일로에 있고 내년에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들을 통해 나오고 있다.
위기가 더 심화되기 전에 경기 부양과 기업 활력 회복을 위한 정책들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법인세 인하도 그 중 하나다.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경기침체 장기화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자금 부담을 완화시키는 데 가장 효과가 좋은 정책이 법인세 인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지난 7일 국회에 법인세를 인하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조속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하는 경제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경제단체들은 ▲경영난 해소 ▲투자‧고용 증가 ▲외국인투자 유치의 마중물 ▲사회 전반적 혜택 ▲대‧중소기업 균형 감세 등의 관점에서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동성명 발표에는 중소‧중견기업들을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와 중견기업연합회도 포함돼 법인세 인하가 ‘대기업만을 위한 부자감세’라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시켰다.
이들은 이번 법인세법 개정안에 ‘중소‧중견기업 특례’가 신설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큰 감세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설 특례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과세표준 5억원까지 10% 특별세율을 적용하고 있어 조세경감률은 중소기업이 13%로 대기업 10%보다 높다.
경제계는 특히 법인세 인하로 우리 기업들의 경제위기 대응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보려면 올해 중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인세 인하 효과는 법 시행 후 최초로 법인세를 중간 예납하는 내년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야당의 반대로 올해 관련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국회 예산결산심사특별위원회에서 고영인 민주당 의원은 “일반적으로 감세하면 낙수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과연 감세가 경기를 활성화하는지도 봐야 한다”며 “IMF에서도 미국의 감세조치는 투자를 증가시키지 못했다. 미 의회 조사국도 감세 조치가 기업과 초고소득층의 이익만 차지했다고 하고 있다. 감세가 낙수효과를 가져오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당 민병덕 의원도 “법인세를 줄이는 것은 당연히 초부자감세 아니겠는가”라고 거들었다.
이같은 민주당의 반대 입장은 열성 지지층인 노동계와 진보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쉽게 바뀌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와 진보 시민단체들은 법인세 인하 반대는 물론, 오히려 중상위 소득의 개인과 법인에 대한 한시적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진보진영은 상황적 여건과 무관하게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에 대해서는 이념적 거부반응이 클 수밖에 없는데다, 최근 장기화되고 있는 여야 대치 정국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발의 법안(법인세법 개정안) 통과에 거대 야당이 협조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념적‧정쟁적 요인을 접어두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지 여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