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이어 산체스 총리도 평택캠퍼스 방문
반도체, 자율주행·인공지능·핀테크 등 첨단 기술산업의 핵심 품목
공급망 내재화·미중 갈등·기술 경쟁 맞물리며 삼성 기술 움직임 '주목'
미국·독일 대통령에 이어 스페인 총리도 방한 일정의 첫 방문지로 이곳을 택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다. 올해 들어 글로벌 정상들의 발걸음이 유독 평택캠퍼스로 몰리면서 삼성의 반도체 위상이 새롭게 조명을 받는 모습이다.
주요 국가들이 전략 산업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반도체는 미·중 공급망 갈등으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좌우할 핵심 무기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이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한다. 경계현 DS(반도체) 부문 사장 등이 산체스 총리를 맞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이 이날 재판에 불참함에 따라 현장에서 함께할 가능성도 있다.
스페인 총리 뿐 아니라 올해 미국과 독일 대통령도 잇달아 평택캠퍼스를 방문하며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삼성전자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nm(nm·나노, 10억분의 1m)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하며 한미 반도체 동맹을 거듭 강조했다.
이달 5일에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같은 장소를 찾아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각국 정상들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 1순위'로 지목하는 것은 글로벌 선두권 반도체 기업이자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삼성전자를 빼놓고는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축구장 400개를 합친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로, D램·낸드플래시 등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와 초미세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제품을 생산한다.
반도체는 자율주행차, 5G,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핀테크 등 첨단 기술산업에 투입되는 핵심 기반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급 지연 등으로 반도체 부족 사태를 겪었던 각국은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반도체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7월 2800억 달러(약 365조원) 규모의 반도체와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 공제를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로, 막강한 세제혜택을 내세워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유럽의 투자 공세도 만만치 않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반도체 생산능력 20% 확보를 목표로 최대 430억 유로(약 59조원)를 투자하는 'EU 반도체칩법(EU Chips Act)를 추진중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시아 지역의 투자도 상당하다. 일본은 도요타, 키오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 UFJ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 자동차·부품, 낸드플래시 반도체, 이미지센서, 통신사 8곳이 뭉쳐 드림팀 '라피더스(Rapidus)'를 결성했다.
슈퍼컴퓨터, 스마트시티,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분야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 양산을 2027년부터 시작하겠다는 포부다.
노골적인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투자도 적지 않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강조하며 반도체 국산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실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 4년간 연평균 27%씩 매출 증가율을 보이며 칩4(한국, 미국, 대만, 일본)를 맹추격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들이 전략 산업으로 육성중인 반도체가 미·중 갈등을 계기로 더욱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술 중심에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이 더욱 주목을 받는 모습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전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2.3%로 인텔(12.2%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메모리반도체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은 43%에 달하며, 낸드플레시는 34%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대만 TSMC가 시장의 52%를 과점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16%)가 2위로 추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첨단 기술 조기 확보 등으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1위를 차지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갖고 있다.
국가별 공급망 내재화 전략이 앞다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 초미세 공정 반도체 경쟁이 한 데 맞물리면서 각국은 삼성의 움직임을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방한하는 여러 정상들이 평택캠퍼스를 찾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반도체 공급망이 진영화(블록화)되는 상황에서 삼성 반도체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면서 "미·중 갈등 심화로 반도체 공급망 확보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지면서 한국에 오는 각국 리더들이 삼성 사업장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기술개발·투자에 각국이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민·관이 협력해 기술 우위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업이 글로벌 생산설비 투자와 R&D(연구개발)에 나서는 등 경쟁력 제고에 앞장서고, 각 정부부처는 반도체 공급망, 기술 강화를 위해 미국의 주도 아래 추진되는 '칩4' 동맹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국회도 여야가 'K칩스법(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위해 머리를 맞대 반도체 생태계 확충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의 장점을 살리고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 반도체 공급망 전쟁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