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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㉝]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첫사랑과 운명, 그리고 인생


입력 2022.11.30 07:26 수정 2022.11.30 13:1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넷플릭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드라마 제목부터 ‘첫사랑. 첫사랑’이다. 일본의 스타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 ‘퍼스트 러브’(1999)와 ‘하츠코이’(2018)를 모티브로 만들어지고, 우타다의 노래로 시작해 끝나는 드라마답게 곡명 두 개를 이어 제목으로 삼았다.


가수가 직접 쓴 노래 가사들에서 20년의 성숙이 느껴지듯, 1997년 중3 겨울에서 시작해 2021년에 이르는 노구치 야예(소녀 역 야기 리카코, 성인 역 미츠시마 히카리)와 나미키 하루미치(소년 역 키도 타이세이, 성인 역 사토 타케루)의 인생 여정 속에서 드라마는 첫사랑이 우리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 그것이 놓치지 말아야 할 운명인가에 대해 탐구한다.


노구치 야예 역의 배우 미츠시마 히카리 ⓒ이하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worldrama

# 운명도 마스카라처럼 작은 일로 결과가 바뀌어요


30대 후반의 노구치는 택시 운전을 하고 있고, 대학생 시절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치료해 주던 의사(무카이 오사무 분)와 결혼했으나 이혼한 상태다. 열여섯 살이 된 아들 츠츠루(아라키 토와 분)는 아빠와 살고 있는데 공부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크다. 자유로운 영혼의 댄서 소녀 우타(야마다 아오이 분)를 짝사랑하고 있고, 우타를 뮤즈로 한 노래를 작곡 중이다.


노구치는 유럽 오디션에 참가하러 가는 우타가 비행기를 놓치지 않도록 태워 준 인연으로, 택시 기사와 손님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 있다. 유럽으로 장기 댄스 투어를 떠나기 전날 두 사람은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아쉬움을 달랜다.


이때 우타가 노구치에게 한 말이 “운명도 마스카라처럼 작은 일로 결과가 바뀌어요”이다. 택시회사 최고 실적의 최우수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늘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노구치. 단지 20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기억 일부 상실만의 결과는 아니다. 어릴 적 항공 승무원이 꿈이었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정작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있는 삶이 노구치를 힘겹게 한다.


운명을 바꿀 작은 일, 그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나미키 하루미치 역의 배우 사토 타케루 ⓒ

# 기회도 있었고 난관도 있었지.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도전을 그만뒀고 생각도 그만뒀어. 그랬더니 움직이지 못하겠더라. 난 합리화를 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에 만족한다고 말이야. 관성의 법칙 알아? 멈춰 있는 사물은 멈춰 있으려고 해. 지구에 중력이 존재하는 한 물체는 한 번 멈추면 다시는 움직이지 않아


한때 도쿄 토호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고, 친구들이 낸 신청서로 교내 미인대회 1위도 하고, 캐나다 유학생으로 선발되는 기회도 있었지만. 교통사고와 기억상실이라는 난관을 돌파하기보다는 주저앉았다. 노구치는 그런 인생을 ‘멈춘 삶’이라고 여기고 있다.


# 움직이지 않으려는 물체를 밀어주는 힘은 꿈이나 호기심,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존재겠죠. 아닌가요? 마음속에 싹튼 부질없는 소망이 때로는 바위도 움직인다! 꽤 유명한 법칙이에요. 뉴턴이 300년 전에 분명히 증명했을걸요


겨우 열여섯이지만 틀에 얽매이기보다 자신이 지금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사는 우타가 노구치에게 답으로 건넨 말이다. 노구치의 뇌를 두드리고 가슴을 친 건 ‘사랑하는 이의 존재’. 기억상실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는 첫사랑이 아니라 정체된 삶을 오랜만에 흔들어 깨운 한 남자, 아이슬란드로 파일럿의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남자를 생각한다.


단 한 번도 쓴 적 없는 연차를 모아 40일의 휴가신청서를 내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승인을 받는데. 운명은 얄궂게도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지구를 뒤덮고, 아이슬란드로 떠나려던 노구치는 발목이 잡힌다.


'어린' 노구치 야예 역의 배우 야기 리카코와 나미키 하루미치 역의 배우 키도 타이세이 ⓒ

모든 일에는 어두운 면만 있는 건 아니어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3년의 세월 속에서 노구치는 2001년 나미키와 함께 묻었던, 까맣게 잊고 있던 타임캡슐을 찾아간다. 아들 츠츠루는 인기 유튜버 작곡가가 되었고, 우타도 귀국해 츠츠루와 재회한다.


그렇게 3년이 흐른 후에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려 했던 노구치의 의지는 그대로여서 드디어 아이슬란드로 떠난다. 처음엔 ‘이번엔 내 마음이 시키는 곳으로, 사람에게로 갈 거야’였지만 이제는 ‘잃어버렸던 나의 첫사랑’을 찾아간다.


노구치의 삶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으로 만들었던 첫사랑. 다시금 움직이고 싶다고 느끼게 한 다감한 사람. 두 사람이 같은 남자라는 것, 이 또한 얼마나 기막힌 운명인가.


노구치의 아들 츠츠루 역의 배우 아라키 토와(오른쪽) ⓒ

설원 위 아름다운 재회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보너스로 곁들여진다. 나카미와 노구치, 노구치와 나카미는 어릴 적 꿈을 이룬다. 그것도 함께, 한 비행기 안에서.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로 밥을 벌 것인지에 관한 명대사가 노구치의 입을 통해 얘기된 적 있다. 바로 우타가 유럽 투어를 떠나던 날, 비행기가 뜨기 전 아들 츠츠루를 짝사랑 우타에게 데려다주면서 하는 말이다. 결말을 놓고 보면, 노구치의 얘기는 어쩌면 아들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노구치: 엄마의 아빠는 잘생기고 멋지시거든. 네 할머니의 마음을 사려고 예이츠의 시도 낭송하셨어.

츠츠루: 난 그런 느끼한 짓 안 해.

노구치: 젊었을 적에는 시인이 되려고 하셨대.

츠츠루: 할아버지가? 지금은 사장님이시잖아?

노구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은 안 해도 괜찮으니까. 츠츠루는 자신의 선택을 믿어도 될 권리가 있어. 그 선택이 실수였다거나 설령 실패했더라도 인생을 사는 데에는 의미가 있을 거야.


만나야 할 사랑은 만난다, 선택이라는 이름의 운명으로 ⓒ

# 자신의 선택을 믿어도 될 권리가 있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에 인생을 목적을 두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믿을 ‘권리’가 있다, 설사 그 선택으로 인해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에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바로 그러하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삶이다.


이것이 비단 직업, 장래 희망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그 무엇보다 사랑, 자신의 선택을 믿어도 될 권리가 당신에게는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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