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염천교 인근의 남대문 정거장에서 개통식이 열렸다. 인천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경인철도의 개통식이었다. 이제 서울에서 인천까지 불과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었다. 말을 탈 필요도 없었고, 단지 기차역에서 표를 구매한 이후 열차를 타면 그만이었다. 하이네가 철도를 처음 본 이후 “철도를 통해 공간은 살해당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밖에 없다.”라는 말 그대로였다. 당시 철도가 가져온 혁명적 변화를 직감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남대문 정거장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괴테와 더불어 독일의 대표적 시인으로 알려진 하인리히 하이네는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독일에서 혁명과 자유주의를 표현한 그의 글을 검열했기 때문이다. 하이네는 파리에서 살면서 철도를 경험하면서, 철도가 가져올 공간의 변화를 ‘살해당했다’라고 표현하였다. 이 문장 뒤에 이어지는 글은 향후 사람들이 철도라는 이동 수단을 통해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게 될 것인지 잘 묘사하고 있다. “이 노선들이 벨기에와 독일까지 연결되고 또 그곳의 철도들과 연결된다면, 어떤 일이 초래될 것인가! 내게는 모든 나라에 있는 산들과 숲들이 파리로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미 독일 보리수의 향내를 맡고 있다. 내 문 앞에는 북해의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공간이라는 틀을 부수며 달려가는 기차를 보면서 공간이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1904년 부산에서 서울까지 철도가 부설되었다. 이때 부설된 철도는 부산과 서울 간의 이동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시켰다. 말 그대로 ‘공간’이라는 요소를 최소화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동 대상과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선로 위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주로 일본군이었고, 그들이 향하는 곳은 만주였다. 일제는 러일전쟁에 군대를 신속하게 투입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것이다.
러일전쟁 이후 철도는 일제 침탈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07년 약 40만 톤이었던 화물 수송은 불과 10여 년 만에 364만 톤 이상으로 10배 가까운 성장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1925년 9월 경성역사(옛 서울역 역사)가 지어졌다. 처음에는 당시 도교역사 수준의 규모로 건축을 계획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 악화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예산이 축소되면서 현재 규모로 완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역은 일제하 조선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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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경인철도 개통 당시 남대문 정거장은 바라크식으로 제작된 목조건물이었다. 이것을 1915년 남대문역으로 개칭하면서 개축하였다. 1923년 경성역으로 개칭하면서 기존 역사를 철거하고 현재 모습으로 신축하여 1925년 완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성역사(구 서울역사)의 외형을 살펴보면 도쿄역사과 유사하여 한때 도쿄역사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이후 건축 당시 도면 등을 통해 스위스 루체른 역을 모델로 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구 서울역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돔이다. 이것은 구 서울역사와 도교역사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구 서울역사의 중앙 돔은 흔히 비잔틴 건축에서 이용하는 펜덴티브(pendentive)와 돔을 결합한 것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수평적인 이미지에 펜던티브를 이용한 돔을 통해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조화되도록 고려하여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당시 일제의 건축적 역량을 집중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을 일제의 지배 질서 속에 강제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3.1만세운동을 거치면서 더 이상 무력만으로 이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구 서울역사는 일제가 3.1운동 이후 내세운 이른바 ‘문화통치’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 서울역사를 이용하는 이들은 그 맞은편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조선신궁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단적으로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이들은 강제로 조선신궁에 참배한 이후 구 서울역사를 통해 전쟁터로 끌려갔을 것이다. 결국 일제가 내세운 ‘문화통치’ 이면에 자리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soothhistory@na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