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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횡재세' 무서워 돈 벌겠나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2.07 10:10 수정 2023.02.07 15:47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정유는 시황 사이클 타는 업종…많이 벌었다고 뜯어가면 적자 날땐 메워 주나

난방용 연료 80% 차지하는 LNG와 무관…글로벌 석유메이저와도 사업구조 달라

호실적에 '횡재' 타령이라니…기업 돈 뜯어 인기영합 정책 내놓는 행태 지양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극단적인 포퓰리즘은 필연적으로 무고한 희생자를 낳는다. 돈을 퍼주려면 누구에게선가 뜯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호실적으로 간만에 기지개를 펴던 정유업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횡재(?)를 했으니 좀 나눠먹자는 소리다. 이 무슨 알바비 받아 나오다 삥 뜯기는 소리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6일 ‘난방비 폭탄 민주당 지방정부·의회 긴급 대책회의’에서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과도한 불로소득, 과도한 영업이익을 취한 것에 대해서 전 세계에서 이미 시행하는 것처럼 ‘횡재세’ 개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난방비 폭탄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을 틈타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제안하며 생색은 냈는데, 마침 에너지 관련 기업(정확히는 정유업체)들이 좋은 실적을 냈다고 하니 돈을 뜯어내 재원으로 삼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에너지 고물가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 받으니 에너지 기업들이 책임지라’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논리처럼 보이지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다. 우리나라 가정용 난방 연료는 액화천연가스(LNG)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LNG는 정유사들과는 무관한 에너지다. 버스요금 인상 부담을 자동차 회사에서 돈을 걷어 해결하자는 얘기만큼이나 생뚱맞다.


전 세계에서 이미 시행한다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 횡재세를 도입하는 사례가 있긴 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횡재세 도입을 주장하긴 했다. 하지만 ‘수금’ 대상은 글로벌 석유 메이저 업체들이다. 그들은 땅 속이나 바다 밑을 파서 뽑아낸 원유와 천연가스를 팔아 돈을 번다.


엑손모빌, 셰브런(이상 미국), 셸(영국)과 같은 석유 메이저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수십 조원에 달한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해 번 돈이니 난방비 상승 책임을 일부 나눠 져도 된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류의 에너지기업이 없다. 이재명 대표는 국내 정유사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모양인데 SK이노베이션(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와 같은 기업들은 원유를 사다 정제해서 만든 석유제품을 팔아 돈을 번다. 글로벌 석유메이저와는 사업구조도, 규모도 전혀 다르다.


7일 실적을 발표한 국내 최대 정유사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3조9989억원)을 냈지만, 그래봐야 4조원에도 못 미친다. 엑손모빌(69조원)과 비교하면 ‘소박한’ 수준이다.


‘과도한 불로소득’이란 용어도 어불성설이다. 정유사들은 시황 사이클을 탄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으로 불황을 버텨야 한다.


지난해 1~3분기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률은 9.4%로 높은 수준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이 업종별 영업이익률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7~2021년 정유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5%에 그쳤다.


2020년에는 정유업체들이 수조원씩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도 연간으로는 정유 4사 모두 호실적을 거뒀지만 4분기에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SK이노베이션은 6833억원, 에쓰오일은 1575억원의 4분기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올해도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감소 등 불확실성이 커 연간 실적이 꺾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시황 사이클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리는 게 정유업계의 패턴인데 호황 때 돈 좀 벌었다고 그걸 빼앗아 가면 적자를 낼 때는 국고로 메워줄 것인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횡재세 운운하는 어떤 이도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국내에서 기름을 팔면서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휘발유건 경유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시장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정유사들은 석유제품 수출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대한석유협회(KP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유업체들의 석유제품 수출액은 570억3700만 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우리 돈 74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국가 주요 수출품목 중 2위를 차지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인지라 매년 막대한 원유 수입이 불가피하지만, 정유업계는 이를 정제해서 석유제품으로 수출해 국가무역수지 개선에도 기여한다. 지난해의 경우 정유업계 원유수입액 954억5000만 달러 중 60%가량을 석유제품 수출로 회수했다.


기업이 돈을 잘 버는 것은 흠 잡힐 일이 아니다. 장사를 잘 해 많은 이익을 내는 게 회사 구성원과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 나아가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좋은 실적을 냈다고 ‘횡재’니 ‘불로소득’ 타령 하며 돈 뜯어갈 생각만 한다면 무서워서 국내에서 사업을 하겠는가. 횡재·불로소득은 권력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한 대가로 재물을 취할 때나 쓰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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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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